「농부」, 「사회운동가」 아니면 「농민운동가」.
오덕훈(자선토마스.48.상주 서문동본당)씨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을까? 벼농사를 짓는 이땅의 농부이며, 사회 문제에 앞장서 목소리를 높이는 운동가, 생명.환경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농민운동가적인 모습에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찾아간 날, 올 농사를 위한 첫 시작인 볍씨를 소독하는 날이었다.
봄날을 무색하게 하는 제법 쌀쌀한 날이었지만, 부인 황재순(수산나.43)씨, 맏딸 가인(효주 아녜스.초3)과 막내 우겸(대철 베드로.초1)까지 온가족이 마당에 모여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오씨가 소금물에 볍씨를 넣으면, 아이들은 나무막대로 휘젓고, 엄마는 가라앉은 것만을 채반으로 건져내고, 각각의 품종별로 이름을 적어놓으며 마무리. 꼬박 2시간여를 일했다.
오씨는 『대부분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서 농약 등으로 소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농약재배를 위해서는 번거로워도 처음부터 꼼꼼하게 준비를 해야한다』고 설명해준다.
이것으로 끝났을까? 소금물에 넣어 건져낸 볍씨들을 다시 65∼70℃ 물에 넣어 소독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저녁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까지 계속됐다. 오후 6시반. 가족 모두는 서둘러 상주시내로 나가 「이라크전쟁 중단과 파병 반대」를 외치며 평화시위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오씨는 안동가톨릭농민회 상주지역 봉강분회장이다. 생명과 환경을 살리기 위해서는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이웃들을 하나 둘 설득시켜 지난 1999년 공동체를 이뤘다. 현재 10여 가구가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원래 개신교 신자였던 그는 80년대 농민운동을 시작할 즈음, 한 성당에서 농성하면서 신자들의 위로와 선행에 감동해 세례를 받았다. 그후, 가톨릭농민 운동에 참여하며 생명.환경을 지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해오고 있다.
『친환경농업을 말하면서도, 가격을 좀더 높게 받을 수 있다는 경제적인 논리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땅과 자연을 살리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은 날카로운 지적도 서슴치 않는 그는 『혼자만의 평화와 안락을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으며, 자연인.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불의를 보면 잘못됐다는 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한다.
그의 성격을 드러내듯, 오씨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며 지난 2월부터 반전평화시위를 해왔다. 분회 회원들과 함께 상주시내에서 시작한 평화시위는 3월 20일 이라크 공격날부터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까지 매일 오후 7시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져왔다. 관심을 갖는 이가 없어도, 들어주는 이가 없어도, 끝임없이 평화를 위한 간절한 바람은 울려퍼졌다.
전쟁이 종지부를 찍은 지금, 그는 이라크 어린이 돕기를 위한 모금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일을 하기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먼저 생각을 하고 행한다』는 그는 이제 전쟁으로 희생된 무고한 이들에게 작은 도움을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내 황씨의 말처럼 「평범한 삶을 살지 않는 사람」. 정의를 외치고, 생명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서 「민들레」가 연상됐다. 그 홀씨가 곳곳에 퍼져 열매맺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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