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이다. 나는 너에게 무엇이며, 또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그와 구분되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만나게되기 때문이다.
시편 8편은 이에 대한 적절한 예를 보여준다.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그 관계성에 대한 일종의 신학적 모색을 위해 저자는 먼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질문한다. 그분이 나에게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지난주에 다루었던 부분). 이어서 저자는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데, 이에 대한 질문과 답변은 후반부가 시작되는 5절서부터 거론된다.
1. 인간은 누구인가?
『사람이 무엇이옵니까? 어찌하여 당신께서 그토록 그를 기억해 주십니까! 흙의 아들이 (무엇이옵니까)? 어찌하여 당신께서 그를 그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이 구문에서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문학적 기교는 「동의적-점층적 대구법」이다. 같은 내용과 비슷한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강조의 기능을 도모하는 동시에 「사람이 누구인지」라는 질문을 점차로 부각시키는 기법이라 하겠다. 시편 8편에서 이 기법을 통해 「사람」에 대한 동의적 표현으로 대응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다음 행에 등장하는 「흙의 아들」이라는 표현이다.
콘크리트나 시멘트가 없던 그 시대에 가장 흔하게 발견될 수 있었던 질료, 너무 흔하게 주변에 널려있어서 그 어떤 시장적 가치도 지니지 않았던 질료인 「흙」으로 된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편 8편이 모색한 인간에 대한 질문은, 자체적으로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존재, 그저 「흙의 아들」일 뿐임이 무심한 어조로 대답되어져 있는 것이다.
2. 그를 기억해주시기에
이제 저자는 위에서 언급된 「동의적 대구법」을 통해서 또 다른 역설을 제시한다.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그 어떤 합리적 설명으로도 풀어낼 수 없는 은총과 축복을 『어찌하여 그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어찌하여 그토록 돌보아 주십니까!』라고 질문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억하다」(히브리어 자카르)라는 동사는 다분히 성서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동사이다. 이 동사는 단순한 「회상」, 「추억」의 개념을 넘어, 예전에 발생하였던 사건이 정확히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다시 재현됨을 믿는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잊는다」는 것은 「더 이상 믿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서의 많은 전통들은 이스라엘의 죄를 하느님께 대한 「망각」, 즉 「잊어버림」과 결부시키고 있는데, 하느님에 대한 「잊음」은 곧 더 이상 「믿지 않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기억하시는」 하느님의 태도는 인간을 끝까지 「믿고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일 수 있겠다. 이처럼 시편 저자는 강한 역설을 통해 인간은 그저 「흙의 아들」일 뿐이지만 하느님께서 당신의 숨(영)을 불어넣어 주셨기에 그리고 그를 기억해 주시고, 믿고 계시기에 존엄한 존재가 될 수 있었음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기억」인 것 같다. 살아갈수록 기억보다 더 진지하고 솔직한 지식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말이다. 지친 내 영혼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것은 「그분께서 나를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라는 결론, 어쩌면 시편 8편이 우리에게 가장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시편 8편을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에게 이런 제안을 한번 해본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어 있는지」, 한번쯤 진지하게 자문해 보았으면 하는…. 타인에게 그저 낯설고 냉랭한 존재로만 기억되는 「나」라면, 살아온 삶이 너무도 잔인한 고통으로 다가올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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