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의 80개 성상은 일제 치하를 거쳐 8.15 해방, 그리고 남북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 역사의 굴곡과 맥을 같이한다.
한국인들이 가장 어렵고 험난하게 살아온 근대사의 한 가운데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 아픔의 자리를 함께 했으며 이를 뛰어넘어 경제 성장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편 역동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한국교회 선교사업에 적극 동참해온 여정이었다.
또한 본당 사목활동은 물론 교육, 구호, 가톨릭 운동, 문화사업, 레지오마리애, ME, 노동운동 등 특수사목을 전개하면서 한국교회 자립을 돕는 밑거름으로 존재해 왔다.
1923년부터 2003년 현재까지 메리놀회를 통해 한국 교회를 거쳐간 인원은 총 185명. 여기에는 131명의 사제와 9명의 수사, 27명의 평신도 선교사, 18명의 학생들이 포함된다.
그간 사목을 맡았던 본당도 84개에 이른다. 이중 24개 본당은 1941년 평양교구에, 나머지 60개 본당은 한국인 성직자들의 사목을 위해 점차적으로 해당 교구에 이관시켰다.
메리놀회와 한국 교회와의 인연은 192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음 전파가 늦어졌던 평안도 지방은 개신교가 교육 의료사업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교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었던 반면 선교사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조선대목구장이었던 뮈텔 주교는 이같은 평안도 지역 전교 문제를 교황청 포교성성에 의뢰하면서 동시에 미국교회 첫 가톨릭 외방전교회인 메리놀회에 사목 활동을 위임해 달라고 건의했다.
메리놀 회원들이 개신교 선교사들과 같은 국적이어서 적극적인 선교가 가능할 것이라는 이유가 컸다.
이미 중국과 만주에서 활동하며 한국 진출 기회를 기다리던 메리놀회는 마침내 1922년 교황청 포교성성으로부터 평안도 포교권을 위임받았고 1923년 5월 10일에는 방(Patrick Byrne) 신부가, 계속해서 그해 10월과 11월 클리어리(P.Clerry) 신부, 모리스(J.Morris) 신부가 서울에 도착하면서 한국 지부가 공식 출범됐다.
그 이듬해인 1924년 3명 신부와 여섯명 수녀의 추가 파견을 받은 메리놀회는 의주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선교 기반을 마련해갔다.
이후 은산, 마산, 비현 등에 본당을 세워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전개해 갔고 한국진출 10년여만에 19개 본당 134개 공소에 총 신자수 1만7783명을 기록할 만큼 놀라운 교세 증가를 이뤘다. 그리고 이같은 흐름은 해방 전까지 방인 신부 8명, 방인 수녀 39명에 21개 본당 신자수 2만6424명이라는 비약적인 교세 성장으로 이어졌다.
메리놀회가 이 기간동안 심혈을 기울인 것은 한국교회 자립을 염두에 둔 방인 사제.수녀 양성이었다.
그러한 노력으로 평양 지목구 설정 당시 3명이었던 신학생이 1936년에는 방인 사제 11명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고 김필현, 박용옥, 강현홍 등은 우르바노대학과 일본 도쿄의 성프란치스코 사베리오신학교 등에 유학, 한국인 최초로 유학지서 사제품을 받는 사제가 되기도 했다.
방인사제 양성과 함께 방인 수녀회 설립에도 관심을 쏟아 1932년에는 제2대 평양교구장 모리스 신부에 의해 한국교회 첫 방인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가 탄생됐다.
메리놀회는 평양지역을 사목하면서 또한 다양한 출판 사업을 통해 교회와 일반 사회에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월간지 「가톨릭조선」 월보 「성등」의 발간은 오늘날에도 한국교회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남북의 화해를 염원하는 미사」로 한국진출 80년을 기념한 메리놀회는 그 배경을 이같이 북쪽지역서 태동했던 한국 지부의 역사로 설명한다. 죽음의 행진으로 방(Patrick Byrne) 주교가 메리놀회 첫 순교자로 첫 순교의 모범을 보이고 이로인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북녘땅은 한국지부가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라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교회 사목지침에 따라 한국교회 현실이 요청하는 사목 활동 전개에 박차를 가한 메리놀회는 현재 본당사목 외에 노동, 아동, 노인, 해양사목 등 다양한 특수 사목 분야에서 선교회 정신을 구현해 가고 있다.
2003년 현재 24명 회원을 두고 있는 한국지부는 본당 특수사목 활동과 더불어 5명 회원을 중국에 파견중이다. 2001년에는 서울대교구 조해인 신부가 메리놀회 협조사제 신분으로 캄보디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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