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술진흥재단이 3년간 11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 교회」 연구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와 가톨릭 교회의 상호 관계를 연구하는 뜻깊은 기회이다. 「근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연구책임자=박일영 교수)은 지난 5월 3일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에서 제1차년도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엄을 가졌다. 14편의 연구 논문을 총론, 정치.사회, 사상.문화 분야 등 세 분야로 나눠 종합 정리한다. 총론은 정치.사회분과 간사 박문수씨가 정리했다.
1. 연구배경과 문제의식
한국 그리스도교는 전래 200년만에 남한 인구의 25%(가톨릭교회 9%, 개신교 16%)에 이르는 주류 종교집단이 되었다. 이 비율은 아시아에서 가톨릭 국가나 다름없는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사례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사회주의화된 중국과 불교와 신도가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그리스도교인 인구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본의 경우와 비교할 때 더욱 이례적인 결과이다.
양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지난 백년 동안 그리스도교가 한반도에서 근대화와 사회발전을 위해 기여한 정도도 그리스도교 선교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와 같은 독특성과 고유성 덕택에 세계의 종교관련 연구자들에게 한국 그리스도교는 큰 관심사이다.
특히 한국 가톨릭교회는 양적으로는 소수이면서도 높은 사회적 위신과 긍정적인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어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한국 교회가 이처럼 외부로부터 세계선교역사 안에서 고유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데 반해, 정작 한국사회 특히 학계에서는 가톨릭 교회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왜곡된 평가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을 여전히 외래 종교로 인식하는 경우도 흔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상황에서 가톨릭교회의 기존 연구들은 교회내부만을 지향함으로써 타 분야와의 대화에 소홀하여, 우리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서조차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상황에서 출발한다.
2. 연구방법과 분야
이 연구주제는 학제간 작업이 요청되는 것이었기에, 사상.문화와 정치.사회 두 영역에 속하는 여러 학문이 협동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종교현상학, 사상사, 문화사적 접근이 필요한 연구영역은 사상.문화 분과에서, 종교 외적인 영역을 다루면서 동시에 교회와 사회를 연결하는 영역들은 정치.사회 분과에서 다루었다. 사상.문화 분과에는 신학, 종교학, 문학, 음악학 전공자가, 정치.사회 부문은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등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주축이 되고 인문학 분야의 전공자가 보조적으로 참여하였다.
3. 연구문제
이처럼 고유한 한국의 문제 상황에 입각하여 이 연구는 ① 한국의 종교문화와 주변국가 종교문화와의 차이, ② 지난 100년 사이 급격한 신자 증가가 일어난 정치, 사회, 문화적 배경, ③ 한반도의 굴절된 역사 안에서 여전히 수적으로 소수이면서도 사회적 위신이 높은 종교가 된 배경과 그 위신(prestige)의 원천, ④ 지난 100년 동안의 한국 사회와 민족사안에서의 공과(功過), ⑤ 가톨릭과 한국문화와의 접변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양상과 그 함의, ⑥ 가톨릭교회와 근대화와의 상관성, ⑦ 가톨릭교회와 이데올로기의 관계사, ⑧ 가톨릭의 발전사, ⑨ 가톨릭교회의 조직적 특성과 한국인의 문화적 자주성과의 관계 등을 연구과제로 삼았다.
앞의 연구문제들에 유념하면서 세부적으로는 「사상.문화 부문」은 토착종교, 민속과 문화전통, 종교성과 신심, 경전해석, 이(異)문화간 접변과정에서 나타난 현상과 문제, 교회사와 세속사와의 관련을 통하여, 「정치.사회 부문」은 근대화, 시민사회의 형성과 발전, 사회변동과정에서의 가톨릭교회의 역할, 가톨릭 사회교리, 가톨릭 사회복지, 법.제도적 측면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위상, 교육, 여성 운동 분야를 대상으로 하였다.
이 주제 영역들을 통하여 근현대 100년 속에서 종교와 이데올로기간의 만남이 갖는 의미, 이 문화접변과정에서 일방적인 수용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이 과정에서 수용주체인 한국인이 갖는 고유한 종교문화적 특성과 창의적 잠재력, 창조적 변형을 시도하면서도 전통적인 요소들을 고수하는 특성들을 고찰하려 하였다.
4. 연구결과
사상.문화분과에서부터 살펴본다. 토착종교와 가톨릭과의 만남에 대한 연구는 한국의 토착종교와 서양에서 전래된 종교인 가톨릭과의 만남이 한국 근현대 100년 속에서 지니는 종교.문화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서구문화와 한국의 전통문화가 어떤 문화적인 접점을 형성하면서 이 땅에 정착되었는가를 탐구하기 위해 「수신영약」을 기초로 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문화간 대립과 문명간 충돌의 문제들을 풀어 가는 단초를 찾아내고자 하였다. 가톨릭 교회 음악분야에서는 조선어 성가집의 분석을 통하여 가톨릭성가의 보편문화로서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동시에 사회사적으로는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은 아쉬움으로, 그리고 나름의 근대성을 가진 시도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개항기 재건운동과 선교정책은 문호 개방 이래로 전개된 근대화 과정과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해방과 현대사회로의 성장을 위한 수많은 정치.사회.경제.사상적인 운동의 흐름 속에서 세계교회와 한국 천주교회의 선교정책이 어떻게 수립되고 이행되었는지에 주목하여 그 변천과정을 탐구하였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우리말 성서번역사와 성서번역의 의미는 유다-그리스도교 경전의 번역작업과 성서해석방법론의 역사와 실재 그리고 성서연구를 위한 교재들이 어떤 연구방법론을 적용하여 구성되었는가를 신학적인 관점과 정신사적인 측면에서 분석하여, 앞으로의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
한국 가톨릭 신심유형과 그 역사.문화적 배경은 사회.문화적인 변화와 가톨릭 신심형태가 어떻게 한국교회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왔는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해당시기의 신심유형이 행사위주, 개인구령위주적인 특성을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필사본 천주 가사집 출현의 배경과 의의에서는 천주가사라는 문학 형태를 통해 한국어의 발전을 가져온 점을 연구하여, 내용이 갖는 서구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학이나 문화적 배경을 반영함으로써 양자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드러내었다.
외국 선교회의 한국 선교는 베네딕도 수도회를 사례로 이들이 한국교회의 발전과 한국사회의 근대화에 기여한 측면들을 드러내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감추어진 역사들을 발굴하고, 한국교회의 이후 발전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 여러 현상들을 드러내었다.
정치.사회 분과는 가톨릭교회가 한국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되는 정치, 사회, 사회복지, 교육, 여성운동의 측면에서 그 과정과 방법, 내용들을 검토하여 기존의 편중된 시각과 방법들을 보완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근대화의 통로 역할을 한 측면들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아쉬움과 부족한 면모들도 지적하였다.
정치학 분야의 두 연구주제는 교회와 국가관계에서 정교분리원칙을 지키면서도 양자의 영역이 상호 어떻게 관여해왔는지를 드러내면서, 특히 가톨릭교회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규명하였다. 한국 가톨릭 교회 최고지도자들의 교회와 국가관은 사회교리가 실제 교회안에서 지도자와 신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실제 그 영향 정도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실천과 교회와 국가간 관계의 방향이 설정될 수 있음을 규명하였다.
가톨릭 사회교리 수용사는 일차문헌들을 중심으로 당시 가톨릭 교회의 사회관을 조명하여, 일제시대의 사회교리가 보편교회와 보조를 같이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일제의 종교정책과 가톨릭교회는 일제의 종교정책을 총독별로 대별하고, 각 시기의 특징과 반응형태를 분석하였는데 가톨릭교회가 수동적이었던 측면의 배경과 원인을 드러내었다. 특히 역사적 반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건들의 배경을 주로 파악하였다.
가톨릭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효시와 최초로 대변되는 통감부 시기와 이후 전개된 가톨릭 사회복지사를 객관적인 맥락에서 분석하여 기여정도를 평가하였다. 당시 상황에서 복지활동을 한 다양한 주체들의 활약상과 비교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기여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기존의 교회의 평가들이 다소 겸허해야 함을 확인하였다.
가톨릭 여성운동의 흐름은 그 동안의 남성중심적인 시각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해석을 통해 온전한 의미의 가톨릭 여성사 복원을 시도하였다. 이 연구를 통하여 가톨릭 여성의 발자취를 드러내 보임은 물론 기여한 사실도 여러 형태로 밝혀 내었다. 이 작업을 통하여 정치사회분과에서는 근현대 100년의 한국 정치사, 민족사, 사회사 안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위상과 행적,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가톨릭 교회가 미친 영향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5. 평가
이 연구의 가장 큰 의의는 교회의 연구주제들을 국가의 지원자금으로 수행하는데서 볼 수 있듯이 더 이상 가톨릭교회가 외래종교가 아니라 당당한 한국사회의 일원임을 확인한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실제 이러한 취지에 걸맞게, 그 동안 자기중심적인 시각과 방법에 머물렀던 교회의 수동적인 시도들을 과감하게 넘어서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호교적인 관심 때문에 가려졌던 우리의 불충과 부족함을 민족사 앞에 당당하게, 발전계승해야 할 것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또한 다학문간의 협동을 통하여 가톨릭교회와 한국사회가 만나는 여러 측면들을 입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현재는 물론 미래의 사목에 시사하는 바를 적지 않게 제시하였다.
아쉬움이라면 차제에 교회와 연관되는 모든 분야들이 참여하여 교회의 다양한 측면을 더 충분히 드러내었으면 한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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