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성숙을 위한 교육
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고질적인 몇 가지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심화돼왔다. 70년대와 80년대 고도의 성장을 구가하던 한국교회는 이때부터 복음화 성장률이 저하되기 시작했고 주일미사 참례자수 감소, 냉담자 수의 증가, 신앙과 삶의 유리 현상 등 신앙 생활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에 교회 안에서는 외형적인 성장에 걸맞는 내적 성숙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왔고 그 해결책 중의 하나가 교리교육의 강화였다. 다양한 설문 조사들을 통해서 나타나듯이 신자들이 가장 요망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신자 재교육이라는 점도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의 정서와 심성, 사고와 행동 양식에 적절하고, 한국적 언어와 해설로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내면화하도록 하는 교리교육의 토착화는 절실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교리교육의 토착화 문제가 공식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 10월 16일에 발표한 교황권고 「현대의 교리교육」에서부터이다. 이 문헌에서는 교리교육의 사명을 다양한 문화 속에 복음을 토착화시키는 것으로 보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 교리교육은 그 지역교회의 문화와 그 문화의 근본 요소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아프리카와 남미 교회에서 교리교육의 토착화 작업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져왔다.
교리 교육·교재 변천사
한국교회에서 교리교육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토착화된 신앙의 해석과 설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승훈의 영세와 조선 천주교회의 창립 이후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 창설자들은 중국 교회와의 연결 속에서도 독자적으로 교회를 발전시키며 복음을 선포했다.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한문으로 된 성서와 교리 서적들을 한글로 번역하고 동시에 교리서도 저술하는 등 활기를 띠게 된다.
당시 간행된 교리서는 이벽의 「성교요지」(聖敎要旨)와 정약종의 「주교요지」(主敎要旨)가 있다. 성교요지는 49장의 한시로 된 천주교 입문서이고 주교요지는 부녀자와 청소년을 위한 한글 교리서로 상하 두 권, 43장으로 돼 있다. 특히 주교요지는 주문모 신부의 인정을 받고 1932년까지 5회에 걸쳐 재판돼 읽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교리서나 교리교육이 제대로 갖춰진 것이 아니며 지도자급 평신도들이 구두로 행한 신앙 교육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조선교회를 맡으면서 선교사들이 입국해 전교 활동이 활발해졌고 이에 따라 세례 준비에 기본이 되는 교회의 정통 교리를 중국 교리서에서 번역해 가르쳤다.
이때의 중요한 번역 교리서로는 1864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이 있는데 이는 중국교회에 널리 보급돼 있던 같은 이름의 교리서를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한국교회가 처음으로 채택한 교리서였다. 세례, 고해, 성체, 견진 성사의 네 가지 근본 교리를 총 154개 조목으로 나눠 문답식으로 풀이했다.
이때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를 통한 교리 교육, 신앙 교육은 토착적인 교리 교육의 특징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이후 개항과 더불어 여러 교리서가 한글로 번역되었으나 널리 활용되지는 못하고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선교사들이 1934년에 「천주교요리문답」을 발간해 예비신자들을 위한 전국 통일 교리서로 사용했다.
이는 성교요리문답의 154개 조목을 3편 16장 320개 조목으로 대폭 늘려 구성한 것으로 믿을 교리, 지킬 계명, 성총을 얻는 방법 등 3부로 구성됐고 이 교리서에서 70문답을 뽑아 「노인문답」, 35문답을 뽑아 「어린이 문답」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가톨릭교리서 문답식 탈피
「가톨릭 교리서」는 1967년에 간행된 이후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교리서로서 성인 예비신자들과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는 이전의 문답식 교리서 체제를 탈피해 이해식으로 구성됐고 총 52개 과로 꾸며졌다.
1971년에는 세기의 교리서인 「화란 교리서」가 번역되고 미국 교리서도 1977년에 번역해 사용하면서 여러 교리서들이 혼용되고 영세 준비용 교안들이 각 교구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1년 서울대교구 사목국에서 발행한 「초대받은 당신」은 1972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나온 「어른 입교 예식서」의 지침에 따라 단계별로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교과를 편성하고 한국인의 종교 심성에 맞도록 꾸미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교리 교재로 평가받고 있다.
1992년에 나온 「생명의 길」은 본당 예비신자 교리반에 참여하지 못하는 직장인이나 더욱 광범위한 지역의 예비신자들이 우편을 이용해 6개월 정도에 교리반을 이수할 수 있도록 만든 통신 교리서라고 할 수 있다.
1996년에는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공식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주교회의에서 출간됐다. 이 교리서는 1992년 교황청이 발간한 프랑스어판 교리서의 우리말 번역본이다. 이 교리서는 올해 3월 라틴어 표준판에서 번역한 교리서로 다시 발간됨으로써 모든 교리서 편찬에 있어서 그 원천이자 준거가 되는 지침서로의 역할을 하게 됐다.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는 이 교리서에 근거해 예비신자 교리서와 견진 교리서를 펴냈고 앞으로 표준 교리서 등을 발간할 예정이다.
현대화 토착화된 언어
현재 교회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리교육을 보면 주일학교와 예비신자 교리 외에 첫영성체 교리, 견진교리, 혼인강좌 등이 별도로 마련되며 그 외에 구역장이나 반장 교육, 사목위원 교육, 주일학교 교사 교육, 각종 봉사자나 단체장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소공동체 모임이나 성서 공부 모임, 전례력에 따른 사순, 대림 특강이나 피정, 세미나 등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정작 성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리교육 프로그램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의 교리교육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고 결국 예비신자 교리 이후 이어지는 후속 프로그램을 통해 교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교리교육에 있어서 전통적인 교리를 현대적이고 토착화된 언어로 전해주지 못하고 있는 점은 교리교육이 자칫 복음의 진리를 우리의 몸과 마음에 철저하게 내면화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자아낼 우려가 있다.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해 열린 200주년 사목회의 12개 의안 중 교리교육 의안은 이러한 점을 포함해 한국교회의 교리교육 토착화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교리교육 의안은 2항에서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가 제시한 교리교육적 원리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수 만은 없다』며 고유한 방법을 찾다가 빚게 될 지 모르는 『시행착오나 해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교리교육의 쇄신 방안을 모색해서 이를 적응시켜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의안은 특히 결론 부분의 제안 사항에서 한국교회가 양적 팽창에서 질적 발전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국인의 특유한 종교 심성을 십분 이해하고 토착화 작업을 통해 문화적, 종교적 심성에 와 닿는 언어를 개발하며 교육학, 인간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관련 학문을 충분히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모든 구성원들의 직무
이 의안은 지금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부분에서 유효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의안이 교리교육에 있어서의 당면 문제를 지적한 내용은 지금 한국교회 교리교육의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타당한 진단을 하고 있다.
의안은 8항에서 교리교육의 쇄신을 이룩하려는 결의나 노력이 아직도 부족하다며 한국인의 종교 심성을 이해한 교리교육 방법론을 개발하지 못하고 신학적 명제의 요약과 같은 교의의 주입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통교리를 현대의 언어나 토착화된 언어로 들려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교리교재의 빈곤, 교리교사와 지도자의 빈곤, 교사들의 지적.영적 자질의 빈곤, 일선 사목자들의 교리교육에 대한 관심 부족과 자세의 흐트러짐, 교리교육적 환경이나 시설, 조직 등의 미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위원장 최덕기 주교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교리교육의 방법 개선과 토착화에 대해 지적했다. 최주교는 의안의 지적과 상당 부분 상통하는 부분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교리교재의 빈곤, 한국인에 맞는 방법론, 토착화된 언어 사용, 교리교사와 지도자 빈곤, 지도자의 자질 부족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교리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과 재정적인 배려, 그리고 꾸준한 토착화 노력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토착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교리교육 분야에서도 일각에서 꾸준한 토착화 노력이 기울여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 사목연구소가 지난 1987년부터 해온 토착화 연구 세미나를 통해서도 교리교육 분야의 토착화를 주제로 여러 차례의 연구가 이뤄졌다. 사목연구소는 특히 「교리교육 토착화 자료집」의 발간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토착화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교리교육의 토착화 역시 오랜 시간과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며 따라서 교회 전체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 배려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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