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동성애 사이트를 유해매체가 아니라고 판정함에 따라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유해한 인터넷 사이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권위 있는 국가 기관에서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은 현실적으로 동성애에 대해 얼마나 큰 인식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특히 동성애가 소수자 인권 문제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그것이 갖고 있는 윤리적인 문제가 간과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대응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인식 크게 변해
우리 사회 전반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인터넷 설문조사 기관인 리서치랩이 성인 남녀 12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동성애를 인정한다는 대답이 55.7%로 절반을 넘었고 특히 20대의 경우에는 무려 70.6%가 동성애를 인정한다고 대답했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관용의 태도가 급격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 한 연예인의 커밍아웃으로 본격화됐다. 이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통해 트랜스젠더가 된 또 다른 연예인은 주민등록상의 성을 바꿈으로써 국가에서도 성 전환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사례를 남겼다.
대중문화와 연예계를 중심으로 상업성에 바탕, 동성애에 초점을 맞춘 문화 코드가 범람하면서 특히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경우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감소했다. 수년 전만 해도 말을 꺼내기 조차 부담스러웠던 동성애는 광고, 영화, 소설, 뮤직 비디오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주류 문화에서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키워드로 등장했다.
교회 밖의 문제 “아니다”
지난 4월말에는 한 10대 동성애자가 사회적 차별을 비관해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해 이른 바 성적 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했고 심지어 동성애자의 결혼, 입양을 통해 합법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특히 이 젊은이는 천주교 신자로 묵주를 좋아했으며 사무실에도 성모상을 놓아두었다는 것이 언론에 의해 전해지면서 동성애 문제가 교회 바깥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사목적 차원의 대응과 배려가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동성애자의 수는 대체로 10만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에이즈연맹이 지난 96년 9월 세계보건기구의 지원으로 낸 한국 동성애자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동성애자의 현황 파악은 어려움을 전제로 동성애자 밀집 지역을 실사해 약 11만명 정도로 추산했다. 하지만 대개 남성의 경우 3~16%, 여성은 1~3%가 동성애자라는 견해에 비추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이 동성애적인 경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도 이제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사목적 대응과 배려에 대한 고민이 시작돼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가르침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전통적으로 성서는 동성애 행위를 하느님의 율법에 대한 직접적인 위배이고 따라서 죄악으로 해석한다. 교회의 공식 가르침을 담은 여러 서한과 선언문에서도 「객관적 무질서」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1986년 10월 1일 발표한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동성애자 사목에 관한 사목적 배려」라는 제목의 서한은 동성애 행위에 대한 지나치게 관대한 해석이나 동성애적 조건에 대해 중립, 또는 선이라고까지 말하는 오해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면서 동성애는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에 앞서 1975년 「성 윤리상의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문」은 동성애가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목적이 결여된 행위』로 객관적인 윤리악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교회는 동성애 행위가 무질서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들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단죄하며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동성애자들에게 깊은 동정심과 사목적 배려를 보여주어야 하며 결코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결코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의지로 동성애의 경향을 선택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한편 하나의 「장애」로 간주되는 동성애적 조건이 극복될 수 있도록 보살피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동성애 현상을 전체적으로 적대시하는 평가가 잘못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를 전체적으로 관대하게 보는 평가는 같은 잘못이다. 즉 동성애자들이 당하는 불의와 심각한 불행에 대해 무감각한 태도와, 역으로 동성애가 마치 윤리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성적 취향의 문제라는 등의 태도는 마찬가지로 잘못이라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불거지고 있고, 지난해 동성애자 커플을 정상적 부부와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한 독일 등 서구사회에서와 같이 자칫 동성애의 윤리적인 문제점이 간과될 위험성이 있음을 신중히 고려해 이에 대한 사목적 대응 방안이 서둘러 연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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