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이 아니라 난민구호에만 최소 840만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 신자들 사이에서도 나눔의 행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와 본지가 공동으로 이라크 난민돕기 모금운동에 돌입한 후 가장 먼저 사랑의 메아리가 되돌아 온 곳은 강원도 산간이었다. 춘천교구 홍천본당(주임=허동선 신부)은 신자들의 2차 헌금으로 모은 55만8000원을 모금운동 이튿날인 14일 사회복지위원회로 보내왔다.
또 무료 노인 요양원인 경기도 광주 「작은 안나의 집」에서 지내는 110여명의 할머니들은 용돈을 쪼개 봉헌한 봉헌금 113만여원을 두 차례에 걸쳐 맡겨와 가난한 마음이 풍기는 향기를 더해주기도 했다.
청각장애 아동 특수학교인 서울 애화학교의 190여명의 학생들도 사순 기간 동안 희생과 절제로 모은 성금 99만여원을 전해와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런 꾸준한 나눔이 이어지면서 사회복지위원회 계좌에는 모금운동이 시작된 지 한달여만인 5월 14일 현재 3300여만원의 성금이 쌓였다.
이같은 물질적 나눔 외에도 이라크 난민들의 아픔에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도 끊이지 않고 있어 사랑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사회사목부 주최로 지난 4월 8일부터 6월 24일까지 매주 화요일 명동성당을 비롯한 각 본당에서 「이라크와 남북한 평화를 위한 민족화해 미사」를 봉헌하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의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 등에 대한 형제적 나눔을 다짐해오고 있다.
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안호석 신부)는 4월 14일부터 3일간 교구 내 20개 본당 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목포 연동성당에서 출발해 광주 남동성당까지 76km 구간을 걸으며 이라크 난민들이 겪는 고통에 동참하는 도보순례를 실시하기도 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이같은 신자들의 사랑이 모이는 대로 국제 까리따스를 통해 난민촌 건설을 비롯해 생계비 지원 등 이라크 난민 돕기에 지속적인 사랑을 보탤 계획이다.
아울러 사회복지위원회는 필요할 경우 의사와 간호사로 구성된 의료팀은 물론 건축기술자 등 자원봉사단을 파견해 구체적인 도움을 줄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다.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황용연 신부는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NGO는 물론 각국의 적십자사마저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색을 띠기 쉬워 이라크 난민들에게 적절하게 다가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치밀하고 인간본위의 원조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국제 까리따스를 통할 때 사랑을 올바로 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신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 나눔을 호소했다.
현재 까리따스가 조직된 154개국 교회의 나눔의 조정자 역할을 하며 전세계 198개 나라와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제 까리따스는 앞으로 3개월 동안 전쟁 피해자 26만명을 지원하며 이중 13만6440명에게 식량을 제공할 계획이다. 특히 오갈 곳 없는 난민 3만1440명 중 1만440명을 이라크 내 각 성당에 수용하고 나머지 2만1000명은 신자 가정에 수용키로 하는 등 다각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황용연 신부 인터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실천해야”
▲ 황용연 신부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가난과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라크 난민들을 위해 범교회 차원의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황용연 신부의 말 마디마디에서는 안타까움이 배여 나왔다. 이번 모금 운동에서 지난 90년대 초 소말리아 난민 돕기 운동 등에서 보여졌던 신자들의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사랑의 힘을 좀체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신자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런 흐름에 젖어들어 가고 있는 현실, 이런 가운데 복음의 핵심인 나눔의 정신이 희석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하는 황신부는 가난함의 마음으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 모두의 나태함 때문에 하느님이 심어주신 사랑의 복음이 사그라져 가고만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을 통해 사랑의 힘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황신부는 신자들 스스로 자신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심는 일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의 삶에, 나눔의 모습에 자족하는 자신을 돌아볼 것을 권고한다.
『우리 교회가 숱한 박해를 받은 것도, 그리고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것도 모두 가난한 이와 함께 하고자 하는 결단의 삶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황신부는 이라크 난민돕기 운동이 이런 결단으로 새로워질 수 있는 장임을 강조한다. 배고픈 이에게 한끼의 밥을 줬다고 할 일을 다한 게 아니라 다시 제 힘으로 일어설 때까지 돕는 게 그리스도인의 몫이라고 역설하는 황신부는 「가난한 이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상」이 우리 시대가 새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이 나눔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우리 시대의 유혹이라고 말하는 황신부는 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꼭 필요한 몫마저 내놓을 수 있는 게 참사랑이라고 강조한다.
『가까운 이웃과 형제를 살리는 일이 곧 자신을 살리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살맛 나게 하는 가난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있어 희망을 발견한다는 황신부는 모든 신자들이 나눔으로써 서로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길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