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는 최근 명동성당과 인근 지역의 개발에 대한 논의를 위해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와 사제단과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정의채 신부(서강대 석좌교수)는 「명동개발」을 주제로 그 시대적인 요청과 방향에 대해 피력함으로써 추후 진행될 교구의 대사업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 다음은 그 요지이다.
서울시 전역의 대대적인 개발은 이제 실천 단계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명동성당 지역이 간과된 채 시의 명동 개발이 추진될 경우 명동성당은 변두리화되거나 다른 계획에 예속되어 볼품없는 것으로 전락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명동성당은 십여년 동안 말만 무성했지 실제로 개발이 이뤄진 것은 없다.
명동성당은 조국근대화, 특히 4백년의 고도 서울 근대화의 모체이며 단초이다. 쇄국 조선을 개국으로 이끌어가는 도화선이었던 한국 순교사를 통해 순교의 선혈은 개국의 문을 활짝 열게 했고 그 단적인 표출은 명동성당 건축이었다.
민주화 항쟁은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됐다. 박정희 독재정권도 무너졌고 연이은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키는데 명동성당이 그 요람 역할을 했다. 그러기에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보루, 성지가 됐다. 또 많은 고달픈 마음의 위안처이며 은총의 시여처였다.
사이버 세대를 위한 공간
이제 명동성당은 새로운 차원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이 땅의 젊은이들을 문화, 예술적으로 순화해야 하는 것이다. 정확한 정향 없이 마구 흔들리는 젊은이들을 복음적 바탕으로 진정한 인간상 실현에로 이끌어가는, 젊은이들의 문화와 예술의 광장으로 명동 경내를 변신시켜가야 한다.
교회는 이점에 있어 위대한 유산과 현실적 표본들을 갖고 있다.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파리, 프라하 등 세계 곳곳에 가톨릭 정신으로 침투된 문화와 예술의 도시와 거리들이 있다.
명동성당은 새로운 천년대에 진입한 이 땅에서 새로운 사명의 도전을 받고 있다. 큰 가치 혼란에 빠진 젊은이들의 세계에서 더욱 그러하다. 명동성당의 사명은 젊은이들의 마음과 정신을 순화, 고양시켜야 할 민족적 사명이며 교회적 사명이다. 이제 명동성당은 3천년대 인류 문화의 흐름을 따라 그들의 평화와 문화와 예술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명동을 공원 녹지로 계획하는 시청의 휴식 개념은 젊은이들에게는 벌써 다 지나간 것이다. 사이버 세대들의 휴식은 이른바 새로운 동중정(動中靜)의 형태이므로 명동성당이 그런 지나간 식의 쉼터가 된다면 젊은이들을 쫓아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사이버의 세계, 특히 인터넷의 세계는 젊은이들의 삶의 공간이기 때문에 교회는 이 세계를 통해 젊은이들을 복음화시켜가야 한다.
지금은 명동성당 경내 개발의 역사적 시기이다. 특별, 임시사제총회 등을 열어 전체 의견을 듣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 교구장이 신속한 결정을 내려주어야 한다. 이런 주장이 이번 회의로 나타났다. 교구 전체는, 특히 사제들과 본당들은 이런 역사적 과업 수행에 있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서울시가 시의 대개발을 「2020 서울도시 기본계획」으로 진행시키고 있으며 계획단계에서 시와 명동성당이 보조를 맞춰야 한다. 설계도 작성은 첫 단계에서부터 세계적 차원의 인사들을 기용하고 국제 공모 입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문적 위원회는 교구청 고위직이나 성직자 위주의 위원회여서는 곤란한다. 앞으로 이뤄질 명동개발 위원회에는 가톨릭 문화에 대한 깊은 조예와 안목, 미래지향적이며 세계적인 안목을 가진 분들이 집결돼야 할 것이다.
성역화 고집말아야
특별히 명동개발에 있어서 강조할 점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보존」은 가톨릭교회의 역사성, 계승성을 고려할 때 당연히 전제되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보존의 대상이 되는 것은 명동성당과 구 주교관 밖에 없다. 따라서 명동개발에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이 역사적인 현장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더욱 풍요롭게 하는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성역화」는 지금 우리가 하려는 역사적인 대사업과는 그 맥락을 달리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일은 서울시의 대대적인 개발 사업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시의 의지와 계획에 부응하고 공동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내적 개념인 「성역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명동개발이 시의 관심사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국, 사회와 교회의 공통 관심사인 젊은이들의 문제, 그리고 평화, 문화와 예술의 광장으로써의 명동성당이라는 전망이 제시돼야 하며 성역화는 구체적인 추진 단계에서 논의돼야 할 다음 단계의 일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