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생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와 실패한 부부 사이의 차이는 배우자에 대한 배려의 정도가 그 차이라 합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들은 대개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고 배우자에 대해서는 계산적인 감정이 앞서 있는 반면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들은 상대방을 헤아리는 배려의 마음이 앞선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배려의 한 가지 방법은 「나와 너의 역할」에 대한 선을 긋지 않음 이라 합니다. 즉 「나는 먹는 사람」 「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 등 역할 분담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어 놓지 않을 때 배려의 마음이 생기게 되고, 배려가 선행될 때 가사분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자의 행동에 점수를 매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결혼 생활에 대한 갈등이 생기고 있다는 표시이기에 이럴 때일수록 나를 헤아리기 전에 상대방을 배려하고, 역할을 계산하기 전에 짐을 같이 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이고, 이러한 배려가 있을 때 부부의 갈등은 행복을 낳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전도여행에 나섰던 제자들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주 예수님은 열두 사도들을 파견하는데 파견된 제자들은 성공적인 파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수고를 헤아리고 수고한 제자들과 함께 쉬기 위해 한적한 곳, 루가 복음에 의하면 베싸이다로 휴식을 떠납니다. 그러나 많은 군중이 그들을 찾아 왔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휴식을 접고 가르침을 베풀게 된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여기서 마지막 부분, 군중들 때문에 예수님이 휴가 대신 가르침을 베풀게 된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인데 이것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계획을 포기함이 항상 선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의도와 계획을 역경과 반대를 무릅쓰고 성취 할 때 더 많은 성공과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일관성」, 즉 역경과 실패 그리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무엇을 향한 일관성이 그들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이기에 자신들의 목표를 향한 일관된 전진이 경우에 따라 배려를 우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바는 제자들이 휴가 계획을 뒤로 미루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제자들에게 있어 휴식의 의미와, 휴가를 뒤로 미루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휴가. 그 상황으로서는 정말로 필요한 일이요 충분한 이유와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팡이 외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전도 여행은 그 자체가 힘든 생활이었고, 성서에 의하면 그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는 바쁜 생활이었기에 내일의 더 큰 일을 위한 휴식은 충분한 이유와 의미를 가지는 일이고,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루나 이틀 뒤로 미룬다 하더라도 그렇게 흉이 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휴식이 충분한 의미와 이유, 그리고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휴식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를 위한 보조 수단으로 그들의 근본 사명을 우선할 수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어떻든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군중의 처지를 헤아리게 되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휴가 계획을 뒤로 미루고 근본 사명인 가르침을 베풀게 됩니다.
여기서 양의 표상은 당시 지도층, 사제들과 율사들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습니다. 양은 스스로 좋은 풀밭을 찾아 갈 수 없기에 목자는 계절에 따라 양들을 풀이 있는 곳으로 옮겨 가야 하는데, 백성의 목자들인 사제들과 율사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지도자들처럼 이들의 대부분은 직책보다는 직책에서 오는 이익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백성을 볼 수 없었고, 백성을 볼 수 없었기에 군중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군중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측은지심은 특별한 무엇을 상징하는 표현이기 보다는 직책에서 오는 근본 사명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충분한 이유와 의미」 그리고 「욕심」 때문에 너무나 자주 잊어 버리곤 하는 우리의 근본사명을 깨달으라는 경고요, 「타인을 헤아리는 배려」만이 근본사명의 망각에 대한 가장 좋은 치료제라는 사실을 오늘 복음은 교훈으로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타인들의 처지를 하루 10분만이라도 헤아리는 한 주의 삶을 결심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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