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우리는 지혜문학이 가지는 문체적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특별히 속담과 격언은 간결하지만 그 안에 매우 다양한 삶의 역설과 진실을 내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지혜문학의 대표적 문체가 됨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러한 지혜문학의 문체가 어디에서 기원하였는지, 그 기원에 주목해 보기로 한다.
성서 연구가 가지는 공통 일반의 현상이지만, 지혜문학 역시 그 기원을 결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 누구나가 가지는 본연의 욕구이고, 따라서 지혜적 움직임(지혜운동)은 인류가 시작된 태초부터 있어왔다고 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지면에서 다루는 「지혜운동의 시작」이란 지혜로운 삶의 추구라는 차원이 아니라, 지혜문학적 문체, 그러한 정신 사조, 완성된 작품들의 기원에 대한 물음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1) 궁중 지혜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구약성서 지혜문학의 기원을 「여유로운 삶과 자리」라는 환경에서 찾고자 하였다. 너무 삶에 지쳐있을 때, 경제적 파탄, 무질서와 폭력, 전쟁, 고통, 기아, 질병 같은 상황 속에서는 삶의 지혜를 고즈넉이 숙고하고 그것을 담론 형식으로 주고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번 지면에서도 지혜문학적 문체의 발달은 노예나 농노에게 생업의 문제를 이양한 귀족-기득권 층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자들이 모색한 가장 여유로운 곳,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 경제적 여유를 확보하고 있어 삶과 우주의 진리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자리라고 여긴 곳은 바로 「고대 궁중」이었다. 고대 사회 체제 안에서 궁중은 1)가장 여유롭고, 안전이 보장된 곳이었으며 2)인재, 지혜로운 자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혜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2) 가정 지혜
다른 쪽의 의견은 지혜문학의 시작을 「가정 공동체」로 보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장 먼저, 그리고 근본적으로 대하게 되는 곳은 가정이라는 테두리안에서이다. 따라서 원활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러 기술들의 수록이라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지혜문학 작품들은 가정에서부터 기원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적지 않은 지혜문학 작품들이 『내 아들아』라는 호격으로 시작된다는 데 있다(예, 잠언 1~9장).
이러한 작품은 이집트의 지혜문학 안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여러 「세바이트」(sebayite, 이집트의 지혜적 내용을 모아 책으로 묶은 규범집)안에 보면 『누가 그의 아들 누구에게 저술하는 교훈의 시작』이라는 양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혜문학 연구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롤랑 머피(R. Murphy) 역시,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지혜라면 이는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에게 전하는 내용, 즉 삶은 어떤 것이며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할 것인지를 통해 전달되었다고 본다.
지혜는 언제나 깨달음을 통해서 온다. 여러 깨달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자신에 대한 앎」일 것이다. 직위, 재력, 미모, 건강 등 현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요인들을 점검하는 것도 물론 자신에 대한 앎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때론 내게 「허물」이며, 언제 상실될 지 모를 가변적인 것임을 깨닫는 것 역시 자신에 대한 앎일 것이다.
아무튼 이 모든 허물을 떠난 「본연의 나」를 가장 잘 인식하게 하는 곳은 가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족은 내가 누구이며 누구의 딸, 아들인지를 「기억하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가정 지혜 기원설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진다고 보여진다.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많아지는 휴가철이다. 올 휴가는 내가 누구인지, 누구의 아내이며, 또 누구의 아빠인지를 깨닫는, 그리하여 삶의 조잡한 허물들로부터 온전히 풀려나 참된 지혜를 발견하게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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