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번역 성서에서는 성령을 「협조자」라고 번역하는데 이 단어는 원래 「법적인 보조자 혹은 지지자」를 뜻하는 말로써 그리스 법정의 변호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변호인은 요즘 변호사처럼 돈 받고 일하는 전문직이 아니라 대부분이 피고의 친구요 지인이고, 때로는 잘못 죄인을 변호하면 함께 죄인으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지지자는 때로는 희생을 각오하고 친구를 위하여 힘이 되어 주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사후 제자들이 용감해지고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가장 좋은 벗으로서의 성령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강림을 기념하게 되는데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성령강림은 어떤 외적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과 부활, 그리고 하느님과 성령이 나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는 순간, 다시 말한다면 나와 함께 있는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을 깨닫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는 두 가지 상충되는 성령강림 사건을 보여 줍니다.
먼저 오늘 요한복음은 공적 사명을 수여하는 발현사화의 일부로서 부활절 저녁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성령을 수여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한 날 저녁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부활을 확신시키면서 즉시 제자들을 파견하시고, 성령을 수여합니다. 이로써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하신 그분의 약속이 성취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성령을 주시는 동작을 「숨을 내쉬셨다」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내쉬신 숨은 창세기 2, 7절을 상기시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창세 2, 7).
따라서 이 의미는 제자들을 사도로 「창조」하셨다는 의미와 함께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공동체는 하느님의 계획을 이어 받을 새로운 인류가 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새로운 인류의 시작」으로서의 성령 강림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여기에 비해 사도행전이 전하는 성령강림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했다고 증언합니다.
원래 오순절은 보리와 밀을 수확하고 나서 햇곡식을 신께 바친 가나안 정착민들의 봄 수확 감사제였습니다. 그러나 이 축제는 시나이 산에서 이루어진 계약과 율법 수여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로 변화 되면서 과월절을 기점으로 오십일 째 거행되는 축제라는 의미에서 오순절이라 이름 붙여지게 되었고, 보리와 밀의 추수 감사제라는 의미와 더불어 「하느님 백성의 출현」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날을 성령강림과 연결시키는 저자의 의도는 성령을 통한 새로운 하느님 백성(교회)의 탄생을 아주 멋지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약 120명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언어로 말하는 말의 기적 현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기적은 분열된 인류를 낳게 한 바벨탑 사건(창세 11, 1~9)을 상기시키면서 성령을 통해 가져올 인류의 일치, 구원의 보편성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보여 줍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의 기사는 초대교회의 탄생은 예수님께서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이 내려주신 성령의 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성령은 인종과 나라의 온갖 장벽과 한계를 뛰어 넘는 능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이러한 차이가 유래 할까요 ?
그 이유는 이 본문들은 모두 성령체험에 대한 사실적 묘사이기 보다는 초대교회 탄생에 대한 「신학적 사상」을 전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성령강림은 어느 특별한 날, 특별한 사건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성령은 이날 비로소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태초에 활동하고 계셨고, 구약의 현장과 예수님 탄생과정에 깊이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 강림 사건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발견으로써 어쩌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아하(그렇구나)의 체험」, 정신적 자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느껴 봄으로 초대 교회의 생생한 성령 체험을 맛보는 축일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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