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예의를 지킨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겸손할 것,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 마치 우리가 남을 사랑할 때 하는 것처럼…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은 바로 이러한 자신과의 진정한 조우를 통해서 시작되는 것임을 시편 130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주에 이어 3절부터의 내용을 살펴볼 차례인데, 저자는 이 구절을 통해 자신의 죄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길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3절: 『만일 당신께서 잘못들을 살피신다면…누가 서있을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 수 있다. 시편 130의 저자는 자신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으시라는 탄원에 이어, 그 어떤 인간도 하느님의 공정한 심판 앞에서는 완벽할 수 없음을 「반의적 강조 용법」(『누가…할 수 있겠습니까?』)으로 처리하고 있다.
4절: 『그러나 당신께는,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게 하는 용서하심이 있사옵니다』
시편 저자는 4절에서 그러한 한계성에 대한 고백이 철저히 자신의 「신관」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인간이 죄를 담담히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가 죄의 현실을 충분히 이기실 수 있다는 하느님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죄의 힘 보다 더 강한 것이 하느님이 주시는 용서의 힘이기에 우리는 죄인이지만 담담히 그 분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5절: 구조에 대해서 언급할 때 밝힌바 있듯이 5절부터 시편의 후반부가 시작된다. 기도자의 탄원에 귀를 기울이는 대상이 야훼에서 이스라엘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5절은 특징적으로 「교차 배열적 구조」(A-B-B「-A」)를 통해 기도자가 고대하고 있는 분은 바로 하느님뿐임을 명시하고 있다.
A. 나는 기다립니다(1인칭 동사) -> B. 야훼를(목적어)
B. 「그의 말씀을(목적어) -> A」. 나는 희망합니다(1인칭 동사).
6절: 『내 영혼은 주님을 (기다립니다).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꾼보다도』
성서의 많은 구절들은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파수병들의 고초를 묘사하고 있다. 길고 긴 밤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보다 더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 밤을 「혼자서」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 아닐까. 오래도록, 혼자 고독하게 어둠을 견디어왔던 자에게 아침의 서광은 곧 구원의 빛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파수꾼의 이미지를 통해 죄의 긴 밤을 지나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의 현실을 신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시편 130은 파수꾼의 이미지를 두 번이나 반복함으로써 저자 자신의 애타는 기다림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7~8절: 『오 이스라엘이여 희망하여라, 야훼를 야훼께는 불변의 사랑이 있고…』
7~8절은 본문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 구절이 칠십인역(구약성서의 그리스어 번역)의 몇몇 사본에서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학자들은 이 구절이 후대에 삽입된 것이기에 발생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 아무튼 이제 기도자는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권고하고 있고, 이 희망은 야훼가 보여주시는 『불변의 사랑』과 『풍요로운 구원』에 근거하고 있음이 제시된다. 즉 야훼의 변치 않는 사랑이 이스라엘을 죄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임이 명백한 신뢰 속에 고백되고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삶은 어쩌면 그런 보이지 않는 본연의 나를 찾아 나서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자비와 불변의 사랑」 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만이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길이라고 굳게 믿는 것, 두려움 없이 삶을 마주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아닐는지….
주 제시된 성서 구절들은 필자의 졸역임을 밝혀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