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가톨릭에 대한 교회 외부의 평가는 피상적인 인상을 묻는 일반인 대상 조사에 그쳐왔다. 반면 지난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작된 「근현대 100년속의 한국가톨릭교회」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실시한 「전문가 조사 보고서」는 전문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보다 깊이 있는 관찰과 분석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그 개요이다.
본 조사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 인문사회분야 지원사업비를 받아 진행하는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① 한국의 종교문화와 주변국가 종교문화와의 차이 ② 지난 100년 사이 급격한 신자 증가가 일어난 정치.사회.문화적 배경 ③ 한반도의 굴절된 역사 안에서 여전히 수적으로 소수이면서도 사회적 위신이 높은 종교가 된 배경과 그 위신(prestige)의 원천 ④ 가톨릭 교회가 주요한 사회적 역할 주체로서 한국의 정치와 사회 변동과정에 미친 영향과 현재의 위상 ⑤ 가톨릭의 한국문화와의 접변과정에서 배경으로 작용한 사상, 문화적 요인들(factors)⑥ 가톨릭이 한국의 근대화에 미친 영향 ⑦ 그동안의 역사 안에서 공과(功過) 등을 규명하여 이후의 학문연구와 발전을 위한 기초 자료를 만들기 위해 시행되었다.
조사대상은 한국학술진흥재단 연구자 정보 데이터 베이스에 등재된 종교 및 인접학문 16개 분야(국문학, 국사학, 동양사, 문화인류학.민속학, 법학.행정학, 사회복지학, 여성학, 정치학, 종교사회학, 종교학, 한국음악학, 한국조형예술, 한국.동양철학)의 현직 교수, 박사, 법조인, 고위공무원, 관련 연구기관의 박사급 연구원 202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가운데 195명이 조사에 응하였고, 공통설문은 195명 전원의 것을, 전공 설문은 부분적으로 내용이 부실하거나 응하지 않은 대상자를 제외한 191개의 사례를 분석하였다.
조사방법은 질문지 조사법으로 진행하였다. 위의 모집단에서 층화추출을 통하여 구성된 표본대상자들에게 2003년 3월 2일에서 30일까지 1달여간 전공별로 공통설문과 전공설문을 우편과 이메일로 발송하여, 마감일까지 발송한 응답지만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조사대상 : 종교 및 인접학문 16개 분야의 현직 교수.법조인.고위공무원 등 202명
▶조사방법 : 질문지 조사법…전공별로 공통설문과 전공 설문을 우편과 이메일로 발송
20세기 한국의 근대화와 가톨릭교회의 역할
천주교 선교 3세기 가운데 근대화와 연결되는 시기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전체에 이른다. 이 시기 가운데 본 연구의 대상 시기는 20세기이다. 대표적인 네 가지 질문의 결과를 통하여 우리 교회의 기여도를 평가해본다.
※표1
20세기 100년 동안 한국종교 가운데 한국사회발전에 가장 기여한 종교로는 개신교가 60.8%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 다음으로 천주교 33.3%, 민족종교?불교 각 1.6% 순이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한 그리스도교의 비중이 94.1%로 20세기의 그리스도교와 한국사회발전이 불가분의 관계였으며, 이 시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들의 기여가 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표2
20세기 100년 동안 한국의 근대화에 가장 기여한 주체로는 박정희 정권이 35.4%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고, 개신교 21.9%, 시민운동 21.3%, 천주교회 7.3%, 일제 3.9% 순으로 기여 정도를 평가받았다. 종교들만을 살펴보면 앞에서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기여도 차이가 100 : 54.7이었는데, 전체 역할주체에 대한 평가에서는 무려 3배의 차이로 개신교의 기여도가 높게 나타난다. 또 하나 의미 있는 결과는 그리스도교의 기여가 29.2%로 전체의 기여도에서 두 번째에 속하였다는 점이다. 이 결과도 그리스도교가 20세기 한국 사회 근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표3
응답 범주에서 거론한 요소들은 20세기 전 기간에 가톨릭과 관련하여 연상할 수 있는 주요 사건이나 단체, 현상들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소 가운데서 정의구현사제단이 34.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외국선교사 18.5%, 근대화 13.8%, 민주화운동 11.8%, 가톨릭농민회 10.3%, 사회복지 6.7% 순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에서 읽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가톨릭의 인상이 주로 현대의 사회적 역할경험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위 6위 안에 1, 4, 5위 세 가지, 비율로는 57%가 가톨릭교회의 대사회적 역할 그 중에서도 사회정치적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4
20세기 전체로 놓고 볼 때는 사회복지가 23.7%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음으로는 민중계몽 22.7%, 의식개혁 21.1%, 정치발전 14.9% 순으로 기여정도를 평가하였다. 앞의 천주교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요소에서 정치적 역할을 높이 평가한 데 반하여 한국근대화에 대한 기여에서는 사회복지를 가장 높게 평가함으로써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 선교가 갖는 특수성을 한국 교회도 공유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 결과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민중계몽과 의식개혁을 높이 평가한 점이다. 이 결과는 간접적으로 앞의 두 긍정적인 역할 분야와 연결된다. 이 장의 시사점은 천주교가 20세기 한국사회발전, 근대화에 비교적 큰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가톨릭교회의 한국화
※표5
천주교가 아직도 전적으로 외래문화라는 주장에 대하여 14.9%가 동의하였고, 8.7%만이 거의 또는 완전히 한국화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외래적인 요소가 많지만 비교적 한국화 된 편」의 67.5%를 한국화 정도로 파악하면, 긍정적인 결과라 하겠지만, 이를 유보적인 결과로 파악하면 아직 한국화 되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아직은 외래적인 느낌을 준다는 표현이 74.4%이므로 한국화?토착화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표6
가장 서구적인 인상을 주는 요소로 신자들의 세례명이 48.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전례의식 14.6%, 성당건축양식 9.4%, 각종 성상 7.3% 순서로 지적되었다.
이 장에서 나타난 결과를 통해 천주교가 한반도에서 200년 이상 살아오면서 이제 민족의 종교로 인식된 측면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주변적이거나 먼 미래에 변질될 요소도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결과에서 천주교의 한국화는 이제 시작이고, 이제까지는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진행되어 나름대로 이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면 이제는 정신사적이고, 종교적인 영역에서 본격적인 한국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이 재확인되었다. 두 번째로는, 천주교가 한국화 되기 어려운 요소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제와는 달리 선교와 사목에 어려움을 겪게 될 미래의 갈등양상을 어느 정도 예견하게 해 준 점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사적이고 정신사적인 측면에서 천주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안주하지 말고, 한국과 한국인의 상황에 천착하여 교회 안팎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을 하도록 요청하는 결과라는 사실이다.
사회적 역할 및 활동평가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활동에 해당하는 9가지 문항에서 전체적으로는 중간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일부 평가항목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불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는 시사하는 바가 다음의 질문을 다루고자 한다.
※표7
이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평균점수는 3.10으로 위의 한미준-한국갤럽의 1997년 조사결과에서 천주교인이 천주교를 평가한 3.69보다는 훨씬 낮았고, 무교의 2.60, 전체의 2.83보다는 약간 높았다. 이 사례에서 천주교가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불교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천주교가 비교적 높은 사회적 위신을 유지하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긴 하나 앞서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아직은 사회적이고 교회외적인 요소들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는 그리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불교가 사회적 역할과 활동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면서도 이 영역에서 천주교를 추월하는 것은 중층복합적 신앙구조를 가진 한국인들에게 불교의 뿌리가 더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8
투명성의 기준에서 가장 취약해 보이는 영역은 현 단계 천주교가 직면한 문제를 밝히는 동시에 현재를 평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투명성의 취약요소로는 사제의 권위주의가 60.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어 재정운영 19.7%, 대규모 시설?경영 16.1%, 기타 4.1% 순으로 나타났다. 세 가지 범주는 현재 천주교회뿐 아니라 다른 종교계가 시민사회화된 한국 현실에서 직접 충돌하거나, 더 이상 종교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약화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과정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체적으로는 천주교도 한국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는 흐름에 속해 있고, 점차 이러한 요소들이 늘어나리라는 점을 시사한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가톨릭교회의 미래방향
미래 천주교의 역할에 대하여는 종교와 국가관계, 지역사회 봉사, 자원할당 우선순위 등 여러 질문이 있었으나 다음의 두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표9
천주교가 앞으로 다원화된 상황에서 가장 역점을 두기를 희망하는 활동에는 종교간 대화 및 협력활동이 47.9%로 가장 높았다. 두 번째로는 종교를 초월한 공동의제설정으로 16%, 이어 종교간 대화 12.4%, 한국종교문화의 이해.외래요소탈피.한국화 노력 각 11.3% 순이었다. 대체로 다원상황을 인정하고, 종교간의 경쟁을 피하면서 종교외적인 활동을 통하여 사회에 봉사하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이 결과는 실제 한국의 종교문화가 경쟁에서 보완체제로, 그리고 유동성과 갈등의 소지가 적은 안정적인 시장상황으로 전환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종교들의 노력여하에 따라 정당성이 부여될 것이라는 점도 시사하고 있어 앞으로 천주교는 물론 한국 종교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데 소중한 정보이다.
※표10
역시 미래의 역할에 대하여 묻는 질문으로 주로 동북아에서 담당하게 될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 가톨릭에서 차지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고유한 위치와 역시 아시아 지역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치, 한국 전쟁 후 세계교회로부터 받은 도움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천주교회는 독특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므로 활동과 관심의 범위를 적어도 아시아 지역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은 교회로나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 질문의 결과는 한국 천주교회가 설정해야 할 미래방향과 아시아 지역내에서 지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응답자들은 59%가 평화운동을 가장 희망하였다. 이어 낙후지역 원조 28.7%, 타 NGO 지원 6.7%, 환경문제 해결지원 5.6% 순으로 나타났다. 이 장에서는 대체로 대외적 역할에 대하여는 기존에 천주교가 긍정적인 인상을 주었거나, 해오던 역할을 지속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내적인 과제에 대하여는 현재 천주교 내부에서 경험하고 있거나 실제 부족한 문제들이 고르게 지적되었다.
결론
간단하게 결과를 요약하여 보면, 근대화에 대한 교회의 기여는 그리스도교 전체로는 비교적 높게, 가톨릭만으로는 이 보다 낮게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기여를 하였다는 것만은 분명히 인정을 받았다. 한국화 정도에 있어서도 그 동안의 역사에서 볼 때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실제 한국사회에서도 실질적인 한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 외래적인 요소들이 적지 않은데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아직 한국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가능하기에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국화가 된 영역은 주로 아시아적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정의와 사회복지처럼 기존 종교와 다르게 그리스도교에 고유한 방식들이었다. 그러나 아직 천주교가 한국인의 정신구조에 뿌리를 내리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특히 교리적인 측면에서는 뿌리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현재적인 평가에 대하여는 아직 다른 종교에 비하여 긍정적이지만, 다른 조사결과들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한국 종교 전반이 영향력과 사회적 위신의 측면에서 감소하고 있는 전체의 맥락에 있고, 천주교도 안심할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점차 이러한 경향이 심화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도 가능하였다. 마지막 방향에서는 한국 천주교회가 시야를 지구적 범위로 확장하고, 봉사의 분야도 다양화해야 하며, 종교의 영역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조사에서는 천주교회가 지난 역사 안에서 최근 35년 내에 긍정적인 사회적 역할을 통하여 사회적 위신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만족스럽지 않은 과거까지도 미화된 듯 한 느낌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천주교도 한국종교 일반이 경험하고 있는 세속화의 맥락에 있으며, 점차 과거와 같은 사회적 영향력과 위신, 그리고 역할범위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이제까지와 같이 낙관적인 전망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이 조사에서 주요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결과라고 하겠다.
이 조사결과가 교회에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먼저 천주교 내부에서 한국사회, 한국의 종교문화와의 관계에서 낙관하고 있는 분위기가 다소 신중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국화는 아직도 긴 시간이 요구되는 과제가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가 얻고 있는 긍정적인 평판과 사회적 위신은 당연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동의와 설득과정에서 얼마나 성공 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에 앞으로의 노력이 현재 보다 더 중요하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한국인의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긍정적인 사회적 역할 못지않게 정신적?영적 문제 해결능력을 갖추는 방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문제의 해결능력에 대해 천주교는 불교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세 번째로, 천주교 내부의 시각이 객관적인 맥락에서 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연구와 조사들이 교회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제는 이를 객관적인 맥락에 비추어 평가하고, 한국사회 전체의 시각에서 자신의 모습을 평가하고, 노력해야 할 요소들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 조사는 새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네 번째로, 앞으로는 시야만이 아니라 활동의 범위도 넓어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투명성의 기준이 매우 높아졌으므로 이 기준에 상응하는 모습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일부 측면들은 이미 이 기준에 미달되는 것으로 지적되어 앞으로 갈등의 여지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천주교가 진정한 한국인의 종교가 되기 위해선 과감히 낡은 틀과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요소들을 쇄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안팎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 조사는 우리 교회의 나갈 방향을 비교적 잘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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