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해미 무명순교자성지(주임=안상길 신부)는 6월 17일 오전 11시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현지에서 대전교구장 경갑룡 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한다.
연면적 1186평에 건립된 새 성당은 1층에 소성당(200석), 유해참배실, 사무실, 식당, 사제관, 수녀원이 2층에 대성당(700석), 3층에 옥상이 들어선 지상 3층 구조로 50억원의 공사비가 소요됐다.
해미성지는 그동안 5만여명의 순례객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3000여명의 이름모를 순교자들의 숭고한 신심과 열정을 기리기 위해 다녀갔지만, 정작 반듯한 성당이 없어 천막에서 미사를 봉헌해야 했다.
지난 99년 2월 이곳으로 부임한 안신부는 새 성당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해 5월부터 전국의 뜻있는 신자들의 관심을 호소하며 3000명 후원회원 확보에 나섰다. 안신부는 전국 본당을 순회하며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한편, 심지어 미국에까지 찾아가 동포 신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안신부는 회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이름을 알 길 없는 무명순교자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대신 봉헌자들의 이름을 비문에 새겨 영구 보존하며, 이들을 위한 미사와 기도를 정기적으로 봉헌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결과 당초 3000명을 훨씬 초과해 총 4028명이 후원 회원으로 가입하는 놀라운 기적을 일구었다. 특히 후원회원들 중 여든이 넘은 독거 노인 한 명은 사글세 방에 어렵게 살면서 폐품 등을 팔아 모은 전 재산 1500만원을 기탁했다고.
안상길 신부는 『역시 순교자들의 후예답게 많은 신자분들이 성원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른다』면서 『이런 분들의 정성 하나 하나가 모여 새롭게 성당을 건립하게 돼 보람되고 아직 한국교회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해미성지측은 새 성당에 편안한 안식처의 이미지를 적극 도입했다. 대성당과 소성당은 무명 순교자들의 생매장 구덩이를 상징하는 원형 구조로 건립됐으며, 실내장식과 외부건물 모두 죽음을 통해 영원한 안식에 이른 순교자들을 기념해 최대한 쉼터로서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성당 정면으로 우뚝 솟아 있는 예수님 상은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깃들고 특별히 이곳에 묻힌 순교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우리 모두 기도드리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화강석을 사용한 성곽형태의 외형은 해미읍성과 연계된 것이고, 3층 옥상은 쉼터의 느낌이 깃든 정자 모습으로 건립된 것이 특징이다. 성당 내부에는 최영심(빅토리아)씨가 디자인하고 성베네딕도회 조 플라치도 수사가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김상미(헬레나)씨가 청동으로 제작한 14처 등이 눈에 띈다.
특히 성당 뒤편에 묘지 형태로 만들어진 유해참배실에 들어서면 한국화가 상성규(안드레아)씨가 순교자들이 잡혀서 죽음을 당하기 까지의 과정을 14처로 생생하게 재현한 그림이 관심을 끈다.
믿음의 선조들이 생매장되고 철사줄에 머리채가 묶인채 호야나무에 매달려 수없이 몽둥이를 맞으며 죽어간 거룩한 이 땅 해미성지. 안신부는 앞으로 보다 많은 신자들이 이곳을 순례하며 굳건한 신앙의 힘을 얻을 수 있길 간절히 희망했다.
▲ 대성당 내부 전경. 편안한 안식처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 안상길 신부가 새성당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 위에서 바라본 묘지형태의 유해참배실.
■ 14처 제작 상성규씨
“기도하며 순교자 삶 그려”
▲ 상성규씨
해미성지 유해참배실에 14처 그림을 제작한 한국화가 상성규(안드레아.대전 법동본당.48)씨는 1년 2개월 작업기간 동안 빠지지 않고 9일기도를 바쳤다고 밝혔다.
3개월 걸린 100호(가로 5m, 세로 2m70cm) 크기의 대형 그림을 비롯해 14처의 그림들은 바로 이곳에서 죽어간 무명순교자들의 발자취.
해미성지 안상길 신부가 해미 순교자들의 죽음을 묵상하며 만든 14처 기도문을 그림으로 재현한 상씨는 당시 순교자들이 과연 어떻게 순교했을까에 대한 영감을 얻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도 속에 해미읍성을 둘러보기도 수차례했으며, 여러 교회사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가며 작품을 진척시켜나갔다.
그동안 대전교구 내 대산, 신평, 공세리, 당진본당 등 여러 곳에 부조, 벽화, 성인상 제작 등교회내에서 적극적으로 봉사해온 상씨는 해미성지 14처를 4차례나 다시 그리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그만큼 그에겐 이번 작품이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개인적으로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이 생겨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신앙을 증거하며 장렬하게 순교하신 이들의 사상과 삶을 담은 작품을 그리는데 제 생애를 다바칠 각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