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후배 사목자들에게 나의 변변찮은 체험들이 행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수락하게 됐다. 또한 지나간 일들을 되짚다 보면 남은 나의 삶이 영성적으로 풍요로워 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란 제목의 원조(?)는 내가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1960년대 후반경 대구 삼덕성당 문화관에서 성소피정을 지도할 때 한 학생이 나에게 『신부님은 다시태어나도 사제의 길을 걷겠습니까?』하고 물어왔을 때, 『만약 다시태어나면 변함없이 이 길을 갈 것』이라고 답했던 적이 있다. 이런 내가 이 기획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재미없고 지루한 이야기지만 신자 여러분들의 넓은 이해를 구하며, 끝까지 읽어주길 당부한다.
▲ 김영환 몬시뇰과 어머니 정복순(데레사) 여사.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 조금은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것 같다. 조금만 부모님 말씀을 안들으면, 「어떤 성인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성인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많이 들었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항상 내가 걸고 있는 목걸이에 관한 것이다. 하루는 어머니께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내가 왜 이것을 걸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어머니는 『너는 베네딕도이고, 목에 걸려있는 성패는 베네딕도 성인이며, 그 성인은 항상 손에 십자가를 들고 서 있단다. 네가 그 성패를 목에 걸고 있으면 마귀가 근접하지 못하고, 네가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줄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죽을 때까지 이 목걸이를 걸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지금 70이 넘은 나이에도 나의 목에는 그 목걸이가 걸려 있다. 학생 때 친구들이 「사내자식이 목걸이 했다」고 놀릴 때에도 나는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면서 먼 산만 쳐다보고 있었다. 새벽에 부모님들의 아침기도 소리에 잠을 깨고, 밥상에서는 꿇어앉아 기도부터 했으며, 자기 전에는 반드시 그 긴긴 저녁기도를 마칠 때까지 꿇어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했던 생각이 난다.
이렇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극했던 어머니의 정성과 신앙이 나에게 전달되었다고 믿고,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또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한없는 기도가 오늘의 내 생활을 지탱해 주는구나, 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어릴 때 들었던 어머니 말씀이 종종 생각난다. 그런 생각이 날 때는 대체로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특히 그러하다.
어머니는 한티에서 4~5시간이나 걸리는 계산성당을 자주 찾아가셨다. 성당 남쪽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지금도 그 옛날 요셉성인의 동상이 있다.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요셉성인께 아들 하나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나를 낳기전 딸만 넷을 낳은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어머니는 기도때마다 이렇게 간청했다고 한다. 『하느님, 아들을 낳게 해 주십시오. 반드시 당신 제단에 제사를 드리는 훌륭한 사제가 되도록 키우겠습니다. 그렇게 당신께 온전히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요셉성인 앞에서는 『성 요셉이여, 도와주십시오. 나도 당신만 아는 희생을 바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 그 희생을 평생동안 바쳤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주무실 때 요를 깔지 않고 주무시는 것이었다. 딱딱한 온돌방에서 요를 깔지 않고 잔다는 것,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일구월심 기도와 희생으로 일생을 보내셨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대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내가 서품예절 중, 제대 앞에 부복(엎드림)하였을 때 특히 어머니의 생각이 많이 난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