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이들이 배고픈 듯싶어 간식을 줄 때가 있다. 그러면 여학생들은 머뭇거리면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살찌는데…』 먹고는 싶은데 왠지 껄끄러운 표정이다. 『넌 살찌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래?』 하면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살쪘다고 말한다. 도대체 내 눈에는 살찐 학생이라곤 통 보이지를 않는데 말이다. 남학생들은 노골적으로 「못 생겨도 괜찮은데 살찐 여자는 제일 싫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디 십대아이들만 그럴까. 유치부 꼬마들도 선생님이 뚱뚱하면 싫다고 한다.
몇 해 전 미국에 있을 때 여름캠프를 도와 준적이 있다. 한국의 초등생들이 20여명 몰려와 미국아이들과 함께 캠프를 하던 중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우리 아이들이 사라져서 소동이 빚어졌다. 미국의 아이들은 숙소에서 곤히 자고 있는 시간에, 십여명이 넘는 우리 한국의 아이들이 호수건너편에서 열심히 뛰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무슨 일이냐고 다그치자, 아이들은 『미국사람들은 무식해요. 저녁간식에 아이스크림을 주면 어떡해요. 살찌잖아요!』하며 오히려 짜증을 내는 것 이였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유난스럽고 지나칠 정도로 외모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필자가 지도하는 미디어비평수업에서의 대부분의 여학생들은(중3)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육체를 억압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매우 분노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난 뉴스를 보면서 불만스러운 것은…항상 이뻐야만 하는 여자앵커와 늙고 못생긴 남자앵커…』 『우리의 눈부터 고쳐야할 것 같다. 보는 이의 눈이 늙고 못생긴 여자앵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아이들은 여성문제에 매우 예민하며 자신이 여성인 것에 대한 자존심을 세우고 싶어 하는 열정이 솟구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긴장을 늦추고 평범한 대화로 돌아가면 여지없이 스스로를 「보여지는 외모」의 틀에 묶고 그 잣대로 남을 판단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집에 가면 부모와 형제들이 그리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과 친구들이 내면의 가치보다 외적미모를 중요시하는 분위기라서일까. 나부터 깊고 깊은 땅속에서의 생명을 느끼고 마음의 깊이를 재려는 노력이 있다면 달라질까.
어른들이여, 아이들을 칭찬 할 때 제발 『정말 너, 예쁘다!』 또는 『야, 너 정말 날씬하구나. 근사하다』라는 말을 피했으면 한다. 『야, 너 정말 착하다』 『야, 너 정말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구나!』라는 칭찬의 소리, 그저 『젊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한』 소중한 존재임을 알리는 내면의 소리를 더 자주 그리고 더 높이 확산되도록 노력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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