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수 신부
▲ 차기진 박사
▲ 강종훈 교수
- 총론 -
▶정리=강종훈 /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지난 5월 23일 대구가톨릭대학교 교목처 강당에서 개최된 한국가톨릭신학학회의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해방 이후 한국사회와 가톨릭 교회」라는 연구 주제를 가지고, 5편의 연구 성과가 발표되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2002년도 기초학문육성 지원사업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추진하고 있는 2개년 연구 프로젝트의 1차년도 중간발표회 성격을 겸한 이번 심포지엄은 가톨릭 교회가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면밀히 따져보는 자리였다.
「인권과 인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 이번 연구 발표에서 연구진이 목표로 삼은 것은 첫째, 해방 이후 가톨릭 교회가 펼친 인권 신장 운동과 인성 함양 교육에 관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종합적인 이해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학계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둘째 그를 통해 사회 일반의 가톨릭 교회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시키며, 셋째 향후 가톨릭 교회가 한국 사회의 발전에 어떤 방향에서 기여를 해야 할 것인지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세 개의 세부 연구팀을 구성하였는데, 역사학 전공자들을 주축으로 하여 가톨릭 교회가 펼친 각종 인권 보호 운동의 흐름을 정리하는 팀, 교육학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가톨릭 교회 및 가톨릭계 교육기관에서 실시한 인성 교육의 성과와 의의를 탐구하는 팀, 그리고 여성학 전공자들을 위주로 하여 가톨릭 여성들의 인권 보호 및 사회 복지 활동의 전개 과정을 검토하는 팀이 그것이다.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을 목표로 삼은 1차 년도의 구체적인 성과를 총괄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역사학 연구팀에서는 1970년대의 지학순 주교 납치 구속 사건과 3.1절 기도회 사건(명동사건)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 정의 운동과 각종 노동운동, 농민운동, 그리고 사회 복지 활동 등으로 나누어, 해당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였다. 교육학 연구팀에서는 해방 이후 가톨릭계 교육기관(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에서 실시한 인성 교육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여 정리하였으며, 아울러 사회 교육의 일환으로 가톨릭 교회 차원에서 이루어진 각종 인성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였다. 그리고 여성학 연구팀에서는 가톨릭 여성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각종 여성 인권 보호 운동과 사회 복지 활동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였다.
가톨릭 교회 내에서 이러한 인권 운동과 인성 교육에 관한 종합적인 자료 정리 사업이 이루어진 바 없기 때문에, 비록 자료집의 형태이기는 하지만 이번 연구 성과물이 지니는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 가톨릭 교회의 인권 운동 및 인성 교육과 관련된 각종 연구에서 이 자료집은 지침서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일반인들도 가톨릭 교회의 활동과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연구는 앞으로 가톨릭 교회의 인권 운동과 인성 교육을 더욱 고양시키는 계기로도 작용할 것이다. 해방 이후 가톨릭 교회가 한국 사회의 인권 및 인성 문제를 개선하고 고양하기 위해 펼쳐온 활동을 정리하는 본 연구가 그 활동을 더욱 격려하고,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자극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그렇지만, 본 연구진들이 늘 유념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연구를 계속 진행함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 연구가 가톨릭 교회의 업적을 자화자찬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본 연구진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연구 결과를 내는 것을 최선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제 2차 년도의 연구는 본격적인 논문 집필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1차 년도의 작업은 애초부터 자료집 제작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어쩌면 큰 고민이 필요 없이, 발로 뛰며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는 것만으로도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되는 2차 년도의 연구 작업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그간 펼쳐진 각종 인권 운동 및 인성 교육의 성과와 의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본 연구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모든 분들의 지속적인 격려를 당부 드린다.
- 역사학 -
“한국 가톨릭 교회의 해방 이후 인권 운동”
▶발표자=△차기진 한국가톨릭신학학회 전임연구원 △이경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철학박사 △강종훈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교수
▶정리=차기진 / 한국가톨릭신학학회 전임연구원
가톨릭 교회의 인권 운동에는 사회 정의나 사회권 획득 운동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라는 입장에서 생존권 운동이나 사회 복지 활동까지를 포함시켜야 한다. 이러한 원칙 아래 본 연구는 「해방 이후 가톨릭 교회의 인권 운동」을 구조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연구 작업을 진행한다는 계획 아래 추진되었다.
해방 이후의 가톨릭 인권 운동사는 한국 현대사와 교회사라는 두 가지 요소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시대를 구분해 보면, 첫째 해방 이후 1967년까지는 「자각기」, 둘째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이 한국의 사회 현실 안에서 구현되어 가는 1968~1979년의 시기는 「성장기」, 셋째 1980년 이후 현재까지는 「확대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본고의 자료들은 이러한 시대 구분에 맞추어 정리되었다.
우선 자각기에 있어서 가톨릭 교회는 주로 시혜적 차원에서의 인권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미국 전국가톨릭복지협의회의 산하 기관인 「가톨릭구제회」의 활동, 능동적인 구라사업, 1961년부터 시작된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학생 운동으로는 1954년에 결성된 대한가톨릭학생총연합회의 활동을 들 수 있으며, 특히 1958년에 창립된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의 활동이 주목된다. 이 가노청은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인권 운동과 함께 소규모의 노동 운동을 전개해 나갔고, 1964년 이후에는 직접 산업 현장에 뛰어들어 임금 노동자를 위한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또 가노청의 활동은 이 시기의 농민 운동에도 도화선이 됐다. 1964년 가노청 안에 농촌청년부가 신설되고, 이것이 2년 뒤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로 독립하기 때문이다.
성장기의 인권 운동에서는 무엇보다도 가톨릭 교회가 사회 정의 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1970년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창립되고, 다음해에는 원주교구에서 부정 부패 추방 운동을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불의와 부정, 인권 탄압과 독재 정치에 저항하는 교회의 사회 정의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1974년 지학순 주교의 납치, 구속 사건과 관련된 정의 인권 운동, 1974년에 결성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노동 농민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67년의 강화도심도직물사건에서 시작된 노동 운동은 1970년대 와서 한국모방, 태광산업(광진섬유) 사건, 서울통상 및 인천 동일방직 사건 등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 옹호에 주력함으로써 일정한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아울러 1972년에 출범한 「한국가톨릭농민회」는 함평고구마사건, 안동농민회사건 등을 통해 내부 결속력을 다지면서 농촌 현장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한편 사회 복지 활동 중에서는 1975년에 설립된 「주교회의 인성회」나 다음해에 설립된 「서울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의 활동을 주목할 만하다.
1980년 이후의 확대기에 와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사회 정의 운동은, 비록 70년대의 역동성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지적도 있어 왔지만, 시민 중심의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또 그 동안 축적되어 온 교회의 내적 기반은 90년대에 고양된 통일 운동 내지는 민족 화해와 일치 운동을 천주교 사회 운동과 일치시켜 나가도록 했다.
노동 운동 대신 1985년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의 창립을 계기로 도시 빈민 운동이 활기를 띠게 되었고, 농민 운동은 우리 농촌 살리기 활동을 중심으로 상당한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농어촌 문제와 도시 빈민의 탄생, 빈부 격차의 심화, 사회 복지에 대한 인식 등이 이러한 인권 운동의 확대에 일조를 하였다. 실제로 일반 사회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복지 운동을 먼저 실천해 나간 선구적 단체 안에는 언제나 가톨릭 교회가 포함되어 있었다. 요약해 보면 1980~90년대에 이루어진 인권 운동은 대체로 민중과 호흡해야 한다는 의도 아래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