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100년만의 물난리라는 대홍수를 겪은 북녘땅을 향해 이어진 사랑의 행렬은 1984년 주교회의 북한선교부가 출범한 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운동이 중심을 이뤄오던 민족의 화해를 향한 여정에 새로운 방향전환을 이뤄냈다. 이를 통해 남쪽 신자들은 자신들의 식탁에 형제를 초대해 사랑을 나누는 은총의 순간을 체험하기도 했다.
이런 전환을 통해 새로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민족화해운동은 지난날 자신의 무관심과 증오를 반성하는 참회운동이었다. 아울러 가진 바를 나눠 형제의 생명을 살리려는 생명운동의 모습을 띠며 다양한 나눔과 실천운동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어려운 이웃을 내 몸같이 여기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운동으로 자리잡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을 향하던 나눔의 손길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더 큰 문제는 뿌리내리기 시작하던 형제의식이 더불어 퇴색하고 있다는데 있다.
이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등 대북지원 관련단체에서 나타나고 있는 원조피로현상에서도 살필 수 있다. 서울 민화위 경우만 보더라도 가장 많은 모금액을 기록한 97년에 비해 98년에는 성금이 3분의 1 가량으로 줄었고 99년에는 또다시 98년 모금액의 3분의 1에 그쳤다.
특히 북한동포돕기가 한창이던 95년부터 2000년까지 한해 평균 10억원을 웃돌던 성금은 2001년 이후로는 5억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관련단체들이 다양한 모금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성금 모금에 대한 호응도가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96년 요원의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북녘형제와의 국수나누기운동도 먼 옛날의 일처럼 여겨질 뿐이다.
이는 IMF사태 이후 이어지고 있는 경제난이 자극한 개인주의가 교회 안에서 완전히 떨어내지 못하고 있던 분단 지향성과 물질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을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95년 이후 지금까지 40차례가 넘게 북한을 방문해 구호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홍콩 까리따스 캐시 젤베거 국제협력부장은 『시련의 기회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남북이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다질 수 있는 계기를 허락하셨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오늘의 이 위기를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과 가르침 안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교구 민화위가 통일을 대비한 인적 물적 토대 마련을 목표로 지난 2001년부터 설립을 추진해온 (가칭)민족화해센터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민족화해에 대한 영성을 높이고 통일에 대비한 사목시스템 구축을 위해 추진돼온 민족화해센터는 그간 한국교회가 꾸준히 쌓아온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기반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평협 민족화해특별위원회 윤갑구(바오로) 위원장은 『신자들이 북한돕기가 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인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교육프로그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북한돕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당연한 몫임을 각인시킬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다운 용서와 화해는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받아들일 때 자기 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 인터뷰/민족화해운동 앞장 수원민화위 김유신 신부
“일치 위해 회개·보속해야”
▲ 수원민화위 김유신 신부
민족의 하나됨을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부터 먼저 돌아보는 회개와 보속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유신 신부는 지금이 회개가 절실한 때라고 밝힌다.
교회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6월 22일 북한땅이 지척인 비무장지대 도라산역 광장에서 봉헌되는 「민족화해 대미사」의 실행본부장으로 행사 준비를 이끌어온 김유신 신부는 「평화의 일꾼」으로서 신자들의 몫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몸으로 느끼고 체화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해 한일월드컵을 통해 이룬 국민화합의 기쁨을 북한동포와 나누기 위해 6.25를 앞두고 평화의 축구공 2002개를 북한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가 하면 그 해 7월에는 80여명의 청년들을 이끌고 250km 구간에서 열린 「평화통일 기원 청년 도보성지 순례」에 나서는 등 민족화해를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이끌어온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런 그이기에 민족화해 대미사도 신자들이 몸소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특별한 누가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통일의 역군이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는 우리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김신부는 민족의 통일을 향한 여정을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가는 순례에 비유한다. 그렇기에 민족화해를 둘러싼 혼란은 하느님이 마련하신 안식처에 다다르기까지 겪어야 하는 시련인 셈이다.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시련을 십자가로 달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려는 노력없이는 하느님의 땅에 다가설 수 없음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김신부는 지난 시기가 민족의 하나됨을 향한 의지를 발굴하고 축적해온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공유하고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장으로 이어나가야 할 때라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위한 길에 신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