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현대사의 피멍울로 남아 있는 나가사키 피폭 한국인들. 그 당시 강제징용과 원폭으로 고통을 겪어야했던 한국인의 수가 무려 1만여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에 대한 문학적 복원은 제 필생의 작업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들의 넋을 위로하며,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바치는 진혼곡입니다』
생동감 넘치는 언어와 섬세한 묘사로 사랑 받아 온 우리시대의 큰 작가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56.세종대 교수)씨가 나가사키 피폭 한국인들의 비극적 삶을 그린 장편소설 「까마귀」(해냄/전 5권/각 권 8000원)를 펴냈다. 지난 1989년 첫 일본 현지취재로 시작돼 무려 15년만에 완성해 낸 원고지 5200여장 분량의 대작이다.
한씨 개인적으로는 1972년 단편소설 「사월의 끝」으로 등단했으니, 자신의 문학인생 30여년 중 절반 가까이를 이 작품에 투자한 셈.
태평양전쟁의 광기가 극에 달하던 1944년초부터 이듬해 8월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까마귀」는 일본의 하시마 탄광으로 징용에 끌려간 한국인들의 참혹한 삶과,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으나 결국 나가사키 원폭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비감어린 어조로 형상화했다. 소설의 제목은 「1945년 8월의 폭염 속에 썩어가던 피폭 한국인의 시신에 까마귀떼가 달려들었다」는 역사적 증언에서 따온 것.
『30여년 동안 창작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힘든 여정을 거친 작품은 처음입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왜 내가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을 써야 하는가, 왜 이 신음소리를 겪어내야 하는가」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이름으로 살다, 조국의 이름으로 죽어간 그들의 아픔을 재현하고 고발하는 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혼들의 신음소리와 비명이 저를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
그가 처음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나가사키를 찾았던 것은 1990년 여름. 이후 그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등을 수 차례 방문하며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과 당시의 역사자료들을 수집했다. 「폭력의 역사」를 최대한 생생하게 증언하겠다는 그의 집념에 따라, 소설 속의 당시 생활상은 물론 작은 에피소드 하나, 때리는 장면 하나도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했을 정도.
한씨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인해 우리는 해방을 좀더 빨리 맞이했을지 모르나, 광복의 기쁨 뒤에는 피폭 한국인들의 눈물겨운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이 작품이 우리 청년학생들의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 미국 UC버클리 한국학연구소에 머물고 있는 한씨는 앞으로 병자호란 당시 치욕의 역사를 담은 역사소설과 한국천주교회 200년사를 포괄하는 소설 등을 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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