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도 자신의 것을 남과 잘 나누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를 어렸을 때의 생활 때문이라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저는 강원도 정선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60년대 초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하듯 저희 가정도 풍요로운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용돈이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은 소신학교 시절부터였고 그 전에는 필요할 때 마다 타 쓰기에 바빴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은 서글펐습니다. 육성회비를 못내 학교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내몰리고, 다시 빈손으로 무서운 선생님들 얼굴을 생각하면서 다시 학교로 가야 했던 시기였기에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호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부모님께 무엇을 사 달라고 때를 썼던 옛날을 떠올리면서 자식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지 못해 아파했을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어떻든 그 때문인지 지금도 저의 돈 씀씀이를 보면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돈을 적게 쓰는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적은 돈에 대해서는 인색합니다. 음식 값으로 십 만원은 아깝지 않게 써도 몇 백원, 몇 천원짜리 물건에 대해서는 까탈을 부리고, 나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눔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위로하는 것은 어렸을 때의 가난이 필자에게 결핍의 심리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해 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저자 하이럼 박사는 인간이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풍요의 심리」를 가져야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심리는 이 세상의 자원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심리입니다. 자원은 항상 풍족하기에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취하고 축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고 있을 때 쉽게 나눌 수 있고, 이러한 나눔에서 풍요로운 삶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무소유의 삶을 사셨던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마더 데레사가 대표적인 인물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어쩌면 오늘 기리는 성체성사의 정신도 이 같은 풍요의 심리가 그 본 바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떻든 이러한 심리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심리가 있습니다. 「결핍의 심리」가 그것입니다. 결핍의 심리는 풍요의 심리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습니다. 세상에는 자원이 부족해서 모든 사람에게 돌아갈 만큼 풍요롭지 않고 항상 모자란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충분하지 않기에 기회가 있으면 내 것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필요할 때 쓸 수가 있으니까요. 따라서 취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움켜쥐어야 합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입니다. 이 시대가 더더욱 이기심과 탐욕이 판치는 이유는 부족한 물질과 재화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거짓된 결핍의 심리 때문이지요.
오늘은 성체성사를 기념하고 그 신비를 묵상하는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체성사에 대한 기념과 묵상은, 단순히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에 대한 어떤 진리와 사실에 대한 탐색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체성사의 재현,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체성사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일차적인 삶은 그 분을 우리의 빵(음식)으로 고백하는 삶입니다. 인간이 음식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참 된 생명의 빵이신 그 분께 의지하는 삶입니다. 돈과 권력과 물질에 의존하여 행복을 찾는 삶이 아니라, 나의 빈 가슴과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그분의 힘으로 채우려는 삶, 그분께 의탁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체성사와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사실은 성체성사는 친교와 일치의 삶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사에 참여하여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우리는 예수님과 일치될 뿐 아니라 같은 빵을 나누는 신자들과 일치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일치, 신자들과의 일치가 바로 성체성사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치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을 내어 놓음에서 얻어진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성체성혈의 신비를 사는 하나의 방법은 예수님을 본받는 나눔의 실천입니다. 당신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소유를 희생의 제물로 내어 놓을 수 있을 때, 성체성사의 삶은 시작되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와 소유를 타인을 위한 선물로 봉헌하는 한주간의 삶을 꿈꾸어 봅시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