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생활 규칙’실천
창립자 아델은 만 4세때부터 가르멜 수녀가 되겠다는 표명을 했을 만큼 아주 어린 나이일 때부터 하느님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사명을 느꼈던 것 같다. 아장에서 멀지 않은 퓌가롤의 트랑 꿸레옹 성에서 귀족으로 태어난 아델은 12세 되던 해 프랑스 혁명으로 폐허가 된 고국을 보며 특별한 부르심과 소명을 느꼈으며 그 이듬해부터는 「개인생활 규칙」을 실천함으로써 수도자로서의 준비와 완덕의 길을 향하는 구체적 준비에 나선다.
아델의 이러한 결심은 자신의 성에서 일하는 이들과 주위 가난한 이들에게 물심양면 도움을 주고 인격적 삶을 살도록 배려한 어머니의 신심 영향이 크다. 어머니의 그리스도인다운 깊은 신앙심과 애덕 정신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것으로 길들인 아델은 이를 통해 개인적인 사도적 삶의 기초를 세우고 또 오늘날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하는 마리아의 딸 수도회의 사도적 삶의 뿌리를 형성했다.
아델은 14세때 견진성사를 받은 친구와 함께 당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많은 젊은이들의 선종을 위해, 또 하느님을 잊고 가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작은회」라는 신심 단체를 만들게 된다. 이를 통해 아델은 회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또 아장 지역 사람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샤미나드 신부와 만남
이후 1808년 아델은 윌리암 요셉 샤미나드 신부와 섭리적 만남을 이룬다. 당시 「신심회」라는 이름으로 평신도 남녀 신심단체를 창설 지도하고 있던 샤미나드 신부는 두 회가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이 두 단체가 합류하기를 제안했다. 양쪽 회원 모두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같은 이름하에 기도 활동을 펼쳐나가게 됐고 모임이 성숙될 수록 회원들안에서 점차 자신들을 마리아께 깊게 봉헌하고자 하는 원의가 생겨났다.
▲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라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가 하신 말씀은 마리아의 딸 수녀회의 정신과 사명의 상징이며 모토다.
선교적 열성의 삶 살아
마리아의 딸 수도회는 이런 평신도 신심단체가 배경이 돼서 탄생했다. 아델은 이전부터 꿈꾸고 있던 수도회 창설이 구체화되면서 온 정열을 그에 쏟았다. 「단하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세상 끝까지 달려갈 각오를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로 수도회원들에게 사도적 열성을 불어넣으려 애썼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선교적 열성의 삶을 살았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요한 2, 5)라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가 하신 말씀은 마리아의 딸 수녀회의 정신과 사명의 상징이며 모토다.
샤미나드 신부는 『마리아에게 귀를 기울이고 믿음에 뿌리내린 생활을 하자』고 독려했다. 이는 샤미나드 신부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라는 모토에 밝힌 첫 번째 의미로 설명되어 진다.
또한 이 모토는 「선교적인 방향」으로 회원들에게 강조된다. 수도회의 고유 사업은 구체적인 사업 하나 또는 사업 형식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인 근원들 또는 사도적 활동의 정신으로 정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