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한국에 온 필리핀인 알마(가명.29)씨는 가구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한국인 김모(32)씨를 만나 결혼했고 아기까지 낳았다. 하지만 작년 말 김씨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비자 만기일이 불과 두 달여 남은 알마씨는 남편 없이는 체류 연장을 할 수 없다. 꼼짝없이 불법 체류자로 분류돼 강제추방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알리사(가명.40)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왔지만 술만 먹으면 주먹을 휘두르는 남편을 피해 집을 나왔다. 생후 23일된 아기 분유 값이라도 마련하려면 당장 파출부라도 해야 하지만 아기를 맡길 곳이 없다. 알리사씨는 남편은 혈육인 아기마저도 싫어한다며 집에는 절대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먹인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필리핀 노동자의 수는 3만여명.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필리핀공동체 사목전담 장 글렌 신부에 따르면 이들 중 약 4000여명의 여성이 국제 결혼 또는 이곳에서 일하다가 한국인과 결혼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 중 가정에서의 폭력과 학대, 따돌림 등으로 가출하고 있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것. 현재 필리핀 공동체와 대사관을 통해 신고된 사례만 200여건에 달한다. 두 달 전에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필리핀 여성이 아파트 10층에서 뛰어 내린 일도 있었다.
실제로 서울 성북동 필리핀 근로자 센터에는 이런 이유로 가출한 필리핀 여성과 아이들이 살고 있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생활고다. 당장 양육비를 마련하려면 일을 해야 하지만 아기 때문에 꼼짝 할 수가 없다. 비자 만기일을 넘기면 불법 체류자로 추방당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현재까지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여성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국적법 개정을 통해 이혼한 외국인여성들도 신분보장을 받으며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사회단체에서 나오고 있지만 법 개정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장 글렌 신부는 『코리안드림을 꿈꾸던 이들이 남편의 폭력과 가정불화, 불안정한 신분보장 등으로 힘겨운 삶의 무게를 지탱해 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국내에서 장기체류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과 내국인과의 자연스런 혼인도 계속 증가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탁아소 신축 도움호소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필리핀 공동체가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탁아소 신축 비용 마련에 신자들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약 3만여명의 필리핀노동자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중에는 한국에서 결혼해 살고 있는 노동자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도 일을 포기할 수 없어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필리핀 노동자들은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본국으로 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또 한국인과 결혼했다가 폭력 등으로 아이와 함께 가출한 여성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반 탁아소를 이용하는 것도 박봉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벅찬 일이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자녀를 위한 탁아소를 서울 모처에 세울 예정이다. 탁아소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24시간 운영되며, 보육사와 간호사가 상주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 필리핀 공동체는 이주노동자들의 의료비를 지급하는 데 진 빚만 3000여 만원에 달하고 있어 탁아소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국 땅에서 태어나 아무 것도 모른 채 고향으로 보내지는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뜻 있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의=011-204-0870 장 글렌 신부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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