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되면 남북을 오가는 이들로 이렇게 붐빌까. 6월 22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은 도라산역은 하루도 채 안되는 잠시 동안이었지만 통일의 그 날을 미리 보는 듯했다. 통일의 땅을 먼저 밟아보는 양 도라산역을 오가는 이들은 조금씩 상기된 얼굴에 웃음을 지우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성부여 이 사람들이 하나되게 하소서」 도라산역 광장에 울려 퍼진 성가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들렸다.
성모님께 통일 염원 초 봉헌
○…행사가 열린 도라산역은 민간인 통제구역인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하고 있어 까다로운 신원인증을 거쳐야 참석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주최측은 미리 참석자 명단을 군에 보내 사전승인을 받고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교통편에 따라 인식표를 달게 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섰던 이들 중에는 인식표가 없어 기차를 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이도 눈에 띄었다. 기차 안에서는 『이대로 평양도 가고 신의주도 갔으면…』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지난해 4월 역이 생긴 후 가장 많은 방문객을 맞은 도라산역 관계자들과 도라산 일대를 관할하고 있는 육군 1사단 장병들은 한때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가톨릭운전기사사도회, 매리지 엔카운터(ME) 서울협의회, 레지오마리애 서울 세나뚜스를 비롯한 숨은 봉사자들이 나선 가운데 행사가 질서정연하게 치러지자 안도하는 모습.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민족화합의 사인판」에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염원하는 글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이산가족인 한정식(시몬.56.서울 행신1동본당)씨는 「하느님 아버지 남한에서와 같이 북한에서도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라는 글을 게시판에 남기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또 도라산역 광장에는 통일의 염원을 담은 초를 성모님께 봉헌하는 장소가 마련됐고 북한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사진전이 열려 눈길을 끌기도.
○…역사 내 「평양 방면 타는 곳」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선명한 개찰구 앞을 서성이던 이기선(대건 안드레아.68.수원교구 영통 영덕본당)씨는 『고향이 평안남도 성천입니다. 여기서 2시간도 안 되는데…』 『아버지 연세가 94살인데 돌아가시면 조상들의 산소도 찾을 수 없어요』라며 개찰구 앞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
장애인·가족단위 참가 두드러져
○…작은예수회를 비롯해 남북한장애인걷기운동본부, 성 라자로마을 등에서 장애인 480여명이 참가해 분단 현실을 함께 돌아보았다. 뙤약볕 아래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들은 민족화해를 향한 누구 못지 않은 의지를 보여주기도.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참가한 이동석(마르코.36)씨는 『조국의 분단 현실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며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는 분단 현실을 극복하는데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분단 현실을 돌아보고 함께 아픔을 나누기 위한 가족 단위의 참가가 눈에 띄었다. 아버지인 청주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사무국장 장만규씨와 행사에 함께 참가한 현욱(미카엘.9개월)군은 천진난만한 미소로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장씨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전쟁도 없어지고 이 땅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겨레 화합·협력해 번영의 길로
○…분단 후 처음으로 북녘땅이 바라보이는 도라산역 광장에서 봉헌된 미사에는 통일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 깃들여 있었다. 오전 11시 주교단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된 미사에서 6000여 신자들은 미사 중에도 비무장지대 철책을 돌아보는 등 북한이 지척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미사를 주례한 김수환 추기경은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고 사람으로 낮춰오셔서 속죄의 재물로 당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용서에는 한이 없음을 보여주신다』며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을 본받음으로써 우리 겨레가 화합과 협력을 바탕으로 함께 번영의 길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대회장인 김운회 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기도와 열성이 더 모이면 빠른 시간 안에 개성에서도 미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라며 『머지 않아 통일의 광장에서 다시 만날 것을 염원하며 통일을 앞당기는 성업에 나서자』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미사 후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단 일행은 육군 1사단장의 안내를 받아 도라산전망대를 방문, 민족의 허리 잇기가 이어지고 있는 남과 북의 경의선 철도 복원공사 모습을 살펴보았다. 교황대사 모란디니 대주교는 『도라산역이 국내역이면서 서로 이질적인 두 나라를 잇는 국제역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하루빨리 하나된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모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