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가을의 어느 날. 우연히 만져진 가슴의 혹은 밤새 장남수(수산나.44.서울대교구 일산 대화동본당)씨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아침 일찍 찾아간 동네 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은 후 의사로부터 들은 청천벽력의 소리. 병명은 유방암이었다.
그 다음날 그녀는 왼쪽 가슴을 잘라냈고, 서른 아홉의 나이에 한 쪽 가슴이 없는 여자가 됐다. 이어지는 여섯 번의 항암치료. 항암제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질 거라고 의사가 일러준 지 2주일만에 장씨는 대머리가 됐다.
충격과 함께 공허한 슬픔과 절망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느낀 순간,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하느님과 그녀의 사랑하는 가족들이었다.
『엄마는 빡빡 머리가 참 잘 어울려요. 참 예뻐요. 나도 엄마를 위해 함께 머릴 밀어버릴까요?』라고 말하는 딸 지윤(리드비나.16)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인 게임기를 내다 판 돈 15만원을 병원비에 보태라고 내놓는 아들 해운(라우렌시오.20)이. 『나는 말이야, 젖가슴이 두 개인 여잘 보면 좀 이상해. 원래 한 개가 정상 아니야?』라고 말하는 그녀의 남편 정원국(바오로.49)씨. 암이 그녀에게 또 다 른 축복임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밥풀이와 눈비비고 이야기」(맑은소리/239쪽/8500원). 이 책은 장남수씨와 그녀의 가족 사랑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의 제목 「밥풀이」와 「눈비비고」는 각각 아들과 딸의 별명.
『비록 왼쪽 가슴을 잃었지만 결코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제 모습이 부끄러웠다면 투병기를 썼겠죠. 제 삶을 통해 잔잔하게 비춰지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가족들에게 앨범을 하나 만들어준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책에 실려 있는 사연들은 눈물겨운 가족 사랑의 이야기 그 자체다. 투병기간을 아픔으로 여기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가족간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뭉클한 감동과 함께 펼쳐져 있다.
4년 9개월. 장씨가 암 선고를 받고 수술 후 살아온 날들이다. 그녀는 이 기간이 하느님의 신비를 더 절실히 느낀 시간들이었다고 술회한다. 나를 위해 살았던 날들에서 고통받는 내 이웃과 장애인들을 위해 눈을 돌릴 수 있는 참사랑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가정의 소중함이 뭔지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제 책을 읽고 함께 공감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어엿한 「작가」라는 명칭을 달게 된 장씨. 기회가 허락된다면 「호스피스」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고 싶은 것이 그녀의 작은 바람이다.
한편 이 책의 판매 수익금 중 일부는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 발전 기금으로 쓰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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