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완곡한 거절 의사를 표하던 두봉 주교는 신자들이 궁금해한다는 몇 차례에 걸친 기자의 설득에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이 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성긴 햇빛 아래 주교관을 빙 둘러싸고 있는 텃밭에서 일을 하다 기자를 맞은 두봉 주교의 얼굴은 그의 밭에서 막 숨을 틔우고 있는 푸성귀들만큼이나 싱그러워 보였다. 오이를 비롯해 상추 고추 가지 당근 토마토 배추 쑥갓 등 갖가지 채소를 손수 기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지나치는 누구에게라도 막걸리 한사발을 권할 것만 같은 인심 좋은 농부의 그것이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온 웬만한 사람보다 많은 세월을 한국에서 살아온 노사제. 두봉 주교의 모습은 이제 완연히 생각도 생김새도 한국인이었다.
『글쎄요. 하느님께서 주신 삶 즐겁게 살기 때문이 아닐까요』
▲ 50년 한결같은 평상심 행주산성 인근 텃밭에서 채소를 돌보고 있는 두봉 주교의 모습에서 50년 한결같은 모습을 볼수 있다. 작은 사진은 1953년 6월 사제품을 받고 있는 두봉 주교(맨 오른쪽).
22년간의 안동교구장 재직시절보다 91년부터 13년째 행주외동에서 지내고 있는 시간이 더 바쁘다고 말하는 두봉 주교는 한달 새 싱가포르와 일본 동경 등지를 다녀와야 했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 속에 자신을 놓아두고 있었다.
기자가 찾은 날도 한국교회의 교세통계 관련기사를 오려 꼼꼼히 스크랩하고 있던 두봉 주교의 면면에서는 식지 않은 교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읽혔다. 자연스레 화제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이 겪는 위기감으로 이어졌다.
『현재와 비교해 과거가 좋았다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신앙의 위기」 「가정의 위기」라는 말에 담긴 현실에 염려를 표하면서도 두봉 주교는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적으로 압축 성장을 해온 사회와 함께 빠르게 발전해온 교회가 이제 숨 고르는 시기를 맞고 있다는 말로 현실을 진단했다.
『오늘의 한국교회 발전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때를 기회로 부족함을 돌아보고 하느님을 만나는 삶, 온 삶이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는 삶으로 거듭 나야 할 것입니다』
신자들 가운데서도 높아만 가는 이혼율에 대해 믿음의 뿌리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한 두봉 주교는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자 가정부터 결단의 삶으로 나아가기를 청했다.
『신앙을 바탕으로 가정에서부터 열심히 기도하는 생활을 뿌리내려야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정에서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향해 놓인 삶」. 이를 위해 그는 가정문화, 특히 식사문화를 바꿀 것을 권했다. 다른 일을 다 해놓고 기도시간을 가지려는 자세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한 그는 오히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기도를 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함께 기도하기 위해 가족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는 식사문화를 다시 세울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신자들의 삶에서 중요한 건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향해 열려 있는 삶입니다. 신자들부터 새로운 가정문화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대한 신앙인의 몫이라는 조금 무거운 물음이 이어지자 두봉 주교는 잠시 고심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예언자 정신」 그것이었다.
『사회 속에서 등대 역할을 하며 어둠을 비추는 일을 하는 이가 필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사회를 향한 교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참다운 하느님의 평화를 위해 우리 시대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신자들의 몫이라고 밝힌 노사제는 그것이 살아있는 신앙이라고 전한다.
『우리 신자들은 저력이 있어요. 우리 안에서 더욱 신앙을 키우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길 하느님께서는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미사를 드릴 때마다 첫 미사이자 마지막 미사인 양 지내라」는 신학교 때의 가르침을 품고 살아왔다는 그는 아직도 주님과의 인연이 어느 정도 깊어졌는지 잘 모르겠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그러나 주님과의 인연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주님과 저는 마음이 깊이 통하는 한마음 한몸임을 느낍니다. 죽는 날까지 주님을 닮아가며 주님다워 가는 길을 걸어가겠지요』
「사는 집에 따라 마음가짐은 물론 삶을 대하는 자세마저 달라진다」며 불편한 조립식 사제관을 고집하며 인생의 남은 시간을 행복한 보좌신부(?)로 지내고 있는 두봉 주교. 그는 퍼내도 줄지 않는 오아시스 같은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특별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열린 마음, 그것이 두봉 주교의 「평상심」에서 얻어지는 「특별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