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는 1930년경부터 매년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축일인 6월 29일 다음에 오는 주일을 교황주일로 지내고 있다. 10억이 넘는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아버지인 교황과 교황직,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업적을 살펴본다.
세계 가톨릭의 아버지
교황을 지칭하는 「Papa」라는 라틴어는 원래 아버지라는 뜻의 「papas」에서 유래했다. 원래 지역교회의 최고 장상을 부르던 용어였으나 8세기부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레고리오 7세 교황(1073 ~1085) 때부터 교황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됐다.
교황의 칭호는 각각 독특한 지위와 책임을 나타낸다. 「교황청 연감」(Annuario Poni tficio)에서는 교황을 로마 교구의 교구장 주교,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서방 교회의 최고사제, 총대주교, 이탈리아의 수석 대주교, 바티칸 시국의 원수 등으로 표현한다.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사도들의 으뜸이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당연히 베드로의 권위와 책임을 계승한 것으로 인정됐다. 교황은 또 세계 주교단의 단장이다. 베드로가 사도단의 단장이었던 것처럼 교황도 주교단의 단장이다.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
이러한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은 교리에 해당된다.
「수위성」은 교회법상 모든 주교와 신자들에 대해 갖고 있는 최고의, 보편적이고 사목적인 권위를 말한다. 이는 베드로의 수위성과 직결되며 로마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로 베드로의 수위성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복음에서는 사도 베드로가 항상 열두 사도 중 첫째였고 독특한 권위를 지녔음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또 베드로만이 새로운 이름을 받았으며 사도들을 대표해 신앙을 고백하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성서상의 독특한 지위는 교부들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초기 교부들 중에서 교황 글레멘스 1세는 고린토 교회에 대해 로마 주교의 사목적 권위를 행사한 첫 인물이었고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로마 교회의 대표성을 명백히 선언했다. 이후 교회사 안에서 로마 교회의 수위성은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불행히도 로마의 대표성에 대한 갈등으로 동서교회의 분열이 야기됐지만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에서는 레오 1세 교황(440~461) 때부터 교황의 수위권은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교황의 무류성은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정적인 교리로 선포됐다.
교황이 최고의 사도적 권좌에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에 최종 결정을 내릴 경우, 그 결정은 무류하다는 것이 공의회에서 교리로 선언됐다.
이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헌장」을 통해 교황의 결정은 『로마 교황이 개인 자격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교회 자체의 무류의 은사를 특별히 지니고 있는 세계 교회의 최고 스승』으로서의 행위라고 규정한다.
교황의 직무
교황은 전세계 가톨릭 교회를 지도하고 통치하는 최고 사목자이다. 교황 직무 역시 교회의 직무 내용처럼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 인간을 성화하는 사제직과 신품권, 교회를 다스리는 왕직과 통치권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주교로서의 통상적인 권위로 가르치는 것을 통상 교도권, 교황 직위를 발동해 가르치는 것을 장엄 교도권이라고 한다. 교황 무류권과 관련되는 것이 장엄 교도권이다. 신품권은 다른 주교들의 신품권과 같다. 따라서 교황이 집전한 성사나 주교가 집전한 성사, 또는 신부가 집전한 성사의 객관적 가치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교황의 통치권은 그 수위권 때문에 모든 성직자들의 통치권을 능가하고 포괄한다. 삼권분립이라는 개념은 교회나 교황에게 해당되지 않고 입법, 사법, 행정의 삼중 통치권과 관련한 최종 결정권자는 바로 교황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 교황청과 바티칸 시국
9개 성(省), 3개 법원, 인구는 약 1천명
교황 보필하는 최고 행정기구가 교황청
교황청 자리잡고 있는 곳이 바티칸 시국
전세계 가톨릭교회의 심장부인 교황청은 세계 교회를 관할하고 통치하는 교황을 보필하는 최고 행정기구이다. 교황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인 바티칸 시국 안에 자리잡고 있지만 가톨릭 교회 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적인 면에서 엄청난 잠재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
흔히 바티칸이라고 부르는 교황청의 현행 부서는 크게 국무원, 성(省), 법원, 평의회, 사무처, 기타 부서로 조직돼 있다. 국무원은 총무부와 외무부를 국무성 장관이 총괄하며 교황청의 가장 중추부서이다. 「성성(聖省)」으로 불리던 성(省)은 모두 9개이고 법원은 3개로 구성돼 있다. 평의회는 평신도, 그리스도교인 일치 촉진, 가정, 정의평화, 사회복지, 이주사목, 보건사목, 종교간대화 등 모두 12개이고 그밖에 교황청에는 3개의 사무처 외에 많은 위원회와 연구위원회들이 있다.
교황청이 자리잡고 있는 바티칸 시국은 라테란 조약에 의해 1929년에 세워진 도시 국가. 교황은 이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모든 입법, 사법, 행정상 모든 권한을 갖는다. 바티칸 시국의 인구는 약 1000명 정도로 대부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다.
바티칸 시국과 교황청은 분명하게 별개의 명칭이지만 국제법적으로는 동등하게 인정받는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의 세속 주권이 인정되는 유일한 장소인 것이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주요 업적과 기록들
공산권 붕괴 한몫, 해외순방 101회
반전운동의 선봉…‘행동하는 교황’
「평화의 사도」, 「행동하는 교황」으로 불리우는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냉전 시대 공산권 폴란드 출신의 교황으로 선출돼 공산권의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세계사의 변혁을 이뤘다.
1978년 10월 16일, 455년만에 비이탈리아인, 그것도 공산 치하 폴란드 출신의 캐롤 보이티야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됐다. 이듬해 폴란드를 방문했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89년 12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만남으로 냉전의 종식을 앞당겼다.
이후 교황은 전세계, 특히 수많은 분쟁과 갈등의 지역들을 찾아다니며 화해와 일치를 호소함으로써 평화의 사도로서의 소임을 수행했다. 교황이 지금까지 나선 해외순방은 6월 22일 보스니아 방문까지 모두 101회.
교황은 세상의 문제에 이전과는 다른 식으로 대응했다. 포클랜드 전쟁과 걸프전 때 주저 없이 평화를 역설했고 이라크전에서는 반전운동의 전세계적 선봉이었다.
대희년을 맞은 교황은 새 천년기의 시작에 적극 대응할 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특별히 2천년 역사 안에서 교회 구성원들의 잘못에 대해 하느님의 용서를 청했다. 교황은 그러나 신앙과 윤리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성인을 배출했는데 83회 생일인 지난 5월 18일 이전에 470명의 성인을 탄생시켰고 1316명을 시복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천년기를 열면서 구상하는 미래는 대개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종교간 대화와 그리스도교 일치」에 대한 관심이다. 두 번째는 「인권」 문제이다. 여기서 인권은 정치적 개념을 뛰어넘는, 생명의 가치와 인간 존엄성, 가정의 소중함을 말한다. 세 번째는 「문화와 신앙의 교류」이다.
교황은 즉위한 뒤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인류를 향해 『두려워 말라』고 말했다. 어떤 비극적 인류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 기댐으로써 「희망의 문턱」을 넘어 참된 평화와 사랑이 세상에 넘칠 것을 믿고 교황은 오늘도 세상을 향해 떠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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