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 음악 테이프도 너무 많이 들으면 늘어지는 것처럼, 너무 많이 오는 비를 보니 온 몸이 늘어지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계속되는 피해 소식과 교통사고 소식은 이내 보도를 접하는 이들의 마음까지 무너지게 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브레이크를 밟게되면 자동차가 원을 그리며 돌게 되는데, 이 때 주변에서 달려오던 차와 충돌하게 되면서 대형사고로 이어지게된다.
이런 사고는 바퀴와 도로 사이가 밀착되지 않고 비 혹은 눈이라는 「이물질」이 끼어 들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도로와 바퀴만이 존재해야할 순수 공간에 비(눈)라는 불청객이 끼여듦으로써 바퀴는 도로에 착지하지 못하고 흔들리게되는 것이다.
지혜문학에서 말하는 지혜가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느님-나, 인생-나, 너-나, 이러한 모든 관계성이 줄 긍정적 결과는 그 둘 사이의 밀착으로 인해 생겨난다. 만일 그 사이에 이물질이 들어오게 되면 둘 중 하나는 흔들리며 충돌하게 되는데, 흔들려버린 존재도 다치지만, 주변의 다른 존재들에게도 치명적 상처를 입히게 된다.
도로와 차바퀴뿐 아니라 신앙, 일, 사랑에도 이물질의 개입은 언제고 우리를 차선에서 이탈하게 한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순수한 경외말고 다른 마음이 끼여들면 신앙은 무너진다. 성공도 그렇다. 일에 대한 성실과 정직한 노력이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성공은 결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순수와 정직은(이물질이 끼여들지 않은) 「지혜」의 다른 이름이며 이러한 지혜는 구원, 생명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지혜(호크마)의 어원적 의미
이제 좀 더 학문적 차원에서 구약성서 「지혜」라는 용어를 살펴봐야겠다. 히브리어로 지혜는 「호크마」(그리스어로는 「소피아」)라고 하는데 구약성서에서 318번 등장하며, 그 반 이상이(138번) 잠언, 욥기, 전도서에 등장한다. 매우 「성문서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이 단어가 등장하는 책들을 통해서도 입증되는 셈이다. 원래 「지혜」라는 말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처럼, 지식이 많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사람 혹은 태도를 표현하거나,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솜씨, 기술, 테크닉, 방법, 수단 등 다소 「경험적인 기술」을 의미하는 말이었다(창세 41, 33 신명 1, 13 2사무 14, 20 판관 28, 14 참조)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히브리어 『지혜』(호크마)는 사변-이론적 능력에 대한 표현이기보다는 솜씨, 기술 등 실제적인 것(이론적인 것이 아니라)과 관련된 능력을 말하는 것이었고, 결국 이성적 차원보다는 경험의 중요성이 부각된 용어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구약성서의 초기 작품에 등장하는 지혜는 점쟁이, 마술사, 해몽가, 건축가, 기술자, 항해사(1열왕 9, 27 22, 48~49 에제 27, 8), 조각가(출애 35, 31~33), 시인, 가수, 연주가(1열왕 5, 10~12) 직물 짜는 사람(출애 35, 25), 대장장이(예레 10, 9), 직업적으로 곡하는 사람, 제사장, 서기관, 재판관, 왕 등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는 이들이 이론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기술과 솜씨들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적용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왕을 지혜로운 자라고 일컬었던 이유는 그가 백성을 통치하는 「솜씨」와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는, 다분히 경험적 측면의 기술인이라는 이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혜문학이 언급하는 지혜는 나와 그(사람, 사건, 사물, 하느님)를 이어주는 가장 순수한 힘이며 역동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진실과 순수 보다 위대한 힘은 없다』,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 차 억지스럽기 만한 세상, 진정한 지혜를 발견하지 못해 흔들리며 가고 있는 세상을 향해 지혜문학이 선포하고자 하는 구체적 전략이며 지혜의 메시지이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공론에만 머물며 권력과 자본을 유지하기 위한 방식으로 전락해온 세상의 얄팍한 지식에 일침을 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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