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학교 시절 들었던 고 지학순 주교님의 82년 광주에서 하신 사순절 강론 중 마지막 말씀이 생각납니다.
주교님은 강론을 마치면서 결론으로 「예」 할 것을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삶을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익의 유무를 따지고 내일을 걱정하기 때문에 「예」 할 것을 「예」 하지 못하고 「아니오」 할 것을 「아니오」 하지 못하는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 정의와 신앙의 진리를 위해 필요했던 단순한 마음과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의탁을 요구하는 말씀으로 이해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열 두 제자의 파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 활동은 인정을 받기보다 불신을 당하시고 심지어 고향 사람들에게까지 배척을 받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 선포 활동을 확장 강화하기 위해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 복음의 배경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파견합니다. 둘씩 파견 한다. 심부름꾼을 둘씩 짝지어 보내는 유다인들의 관례에 따른 행위요, 서로 돕고 격려하는 현실적 이유와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필요한 증언의 효과를 얻기 위함입니다.
심부름꾼이요 증언자로서의 제자 됨, 그리고 상호 협력이라는 제자 됨의 덕목이 둘씩이라는 표현 안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8절 이하는 파견 받은 자들의 몸가짐에 대한 훈시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여행을 할 때 지팡이와 신고 있는 신발, 그리고 입고 있는 속옷 외에는 모든 것을 금하십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강도와 맹수, 혹은 뱀을 쫓는데 쓰이는 유용한 도구였습니다. 강도와 맹수가 들끓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입니다. 다른 복음사가들은 지팡이마저 금하고 있습니다만 마르코는 지팡이만을 허락하는데 이는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품 외에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요구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되는 신발은 당시 상류층이 신던 비싼 구두와는 구별되는 잘 헤어지는 신발이었습니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기에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는 또 다른 신발을 준비하던 것이 당시의 관습인데 이것을 금합니다. 미래의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속옷 두벌은 당시 부자들이 하던 관습이었습니다. 사치를 금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금지 목록에 나오는 빵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계 수단입니다. 빵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 독자적인 생계수단을 가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빵(생계 수단)을 가지지 못할 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빵을 마련해 줄 하느님의 섭리와 복음의 대상자들에게 온전히 의탁하라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자루는 양식의 휴대 등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데 쓰였다합니다. 그러기에 자루를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의미는 축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행복과 미래를 위해 모으는데 이를 금하는 것은 미래와 행복을 섭리에 맡기라는 요구입니다.
전대에 돈도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돈은 금화와 은화와 구별되는 동화(銅貨)를 의미하는 아주 작은 돈입니다. 현실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줄 최소한의 돈마저 포기하는 완전한 의탁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여장 규칙을 통해 예수님이 요구하는 정신은 청빈과 섭리입니다. 스스로 물질적 가난을 선택하는 숭고한 청빈과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완전한 신뢰. 이것이 파견 받은 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그리고 이어 10절에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고장을 떠나기까지 그 집에 머무르라고 이야기 합니다. 더 좋은 환경과 안락함을 구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1절은 제자들을 환영하지 않거든 경고의 표시로 발에 먼지를 털어버리고 떠나라 합니다. 여기서 발에 먼지를 터는 행위는 절교를 뜻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은 모든 부정을 털어 버린다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무 연연할 필요 없이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즉, 복음을 선포했다면 그 결과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결과에 너무 연연하다보면 여기서 죄악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교훈은 간소함과 의탁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미래와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세상의 재화에 얽매임 없이 하느님이 나에게 맡겨 놓은 오늘의 일에 투신하는 삶. 오늘 복음말씀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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