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너무나 유명한 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인 기적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어느 아이의 보리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5000명이나 되는 대 군중을 먹이고 남은 것만도 12광주리나 되는 기적을 베풀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기적은 먼저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심을 보여줍니다. 5000명을 먹인 빵의 기적은 4복음서에 모두 나오는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처신은 의도적이고 능동적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군중에 대한 동정이나 자비로써 빵의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많은 군중을 직접 먹임으로써 자신이 생명의 빵이심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기적은 예수님은 엘리야나 엘리사 예언자 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은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에게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었다는 이적사화와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엘리사 예언자가 빵 20개로 100명을 먹였다는 이적사화가 이 기적에 영향을 끼치는데 특히 엘리사의 이적사화는 이 기적의 원형처럼 여겨집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빵 5개로 5000명을 먹였다. 숫자적인 개념으로만 보더라도 예수님은 엘리사보다 훨씬 탁월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이 기적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예수님은 모세와 같은 예언자라는 사상도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 옛날 모세가 시나이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로 먹였듯이 이제 예수님께서는 외딴 곳에서 같은 백성을 기적적으로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기적은 성체성사의 풍요성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기도하신 다음 빵을 나누어주신 일은 유다인들의 식사 때 의례 주인이나 대표자가 행하는 식사 범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최후만찬을 되새기며 매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만찬례를 지내던 초대교회 신도들이 이 구절을 읽었다면 단순히 유다인들의 식사범절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만찬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적은 만찬례, 곧 미사의 풍요함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서적인 의미보다도 필자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오늘 기적의 현장에 나오는 두 제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느냐?』라는 말씀에 필립보는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안드레아 사도는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마는…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라는 대답입니다.
사실 이 두 대답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대답 모두 은연중에 『안된다. 불가능하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대답들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무서운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필립보 사도의 대답. 이 답변은 머리에서 시작하여 머리로 끝맺음한 인간적인 지혜에서 나온 대답입니다. 우리가 가진 현실적인 여건과 군중의 수를 생각해 볼 때(200데나리온이 없기에) 이들을 먹일 빵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안되는 것, 불가능 한 것에 대해 미련 없이 포기하는 것도 지혜이기에 이런 면에서 본다면 계산적인 필립보의 태도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비해 안드레아 사도의 대답.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5개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말은 이미 안드레아가 군중의 처지를 살피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 노력한 흔적이 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즉, 생각에서 시작하여 생각으로 결론지어진 대답이 아니라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은 결과 나온 대답이라는 점입니다. 처음부터의 포기가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의 결과에서 비롯한 결과물이요, 노력 끝에 나온 마지막 순간의 허탈입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본다면 이 두 가지 대답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은 보잘것 없는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라는 안드레아의 포기에 가까운 결과물을 가지고 위대한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을 이루신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실은 신앙의 요청을 단순히 인간적인 견지에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과 더불어 보잘 것 없는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라는 노력의 결과를 하느님의 일을 위해 내어 놓을 수 있을 때 하느님은 그것으로도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