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정은 아현동이다. 멀지도 않은 친정나들이가 자꾸 소홀해져 가는 게 머지 않아 큰 후회가 될 줄 알지만, 돼지꼬리 마냥 바쁘기 만한 서울살림에 자꾸 잊어버린다. 그런 아들에게 어머님은 옥상에서 직접 가꾸시는 손바닥만한 채소밭(?) 자랑을 먼저 하신다. 이 자랑은 저녁밥상에 놓여진 싱싱한 채소 앞에서 더욱 반짝인다. 그런데 잘 기억해보면 늘 비슷비슷한 채소가 올라온다. 다만 지지고 볶는다라는 말처럼 조금씩 다르게 변한 모습으로 저녁밥상을 빛내고 있다.
지난 주 충북 청원 낭성면 귀래리 가농분회를 방문했을 때 채소이야기가 나왔다. 모두가 알다시피 뭘 해두 먹고살기가 갈수록 힘들어 지는 게 농촌이다. 내년이면 그나마 붙여 먹던 벼농사도 끝장날 판이고, 특용작물이네 뭐네 하지만 농협융자 끌어다 해봐야 결국 빚잔치로 끝나고…. 이 한숨 섞인 이야기 속에서, 잘 나가는 서울 백화점의 유기농 채소이야기가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뭐여? 무우 하나가 얼마여? 약 안친 상치 한봉지가 얼마라구여?』. 쩝쩝….
<문제 1> 채소농사가 무슨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는 것처럼 숫자 정해놓고 생산할 수도 없는 것이고(오이야, 오이야, 이번 주는 스무 개만 나오너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더군다나 약 안치고 화학비료 안 뿌리는 데 어떻게 토실토실 땟깔 좋은 놈만 나오겠는가….
<문제 2> 뭔 놈의 채소가 시도 때도 없이 어떻게 온갖 종류가 다 나온다냐….
<채소의 꿈 1> 그냥 철 따라 심고 나오는 대로 먹으면 안 될라나…. 새끼 키우듯 정성껏 키울테니 나오는 대로 똑같이 나누어 먹으면 안 될라나…. 식구 없는 서울살림에 좀 많다 싶으면 이웃집하구 노나 먹구….
<채소의 꿈 2> 채소 값? 그거 종자 값 하구 거름 만든 거 그리구 며칠 품 판 거 값쳐서 주면 되지, 텃밭농산데 무슨 떼돈을 벌겠다구 욕심을 내겠수….
내 어머니 옥상 텃밭처럼, 무엇을 먹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먹을까를 중요하게 여기는 소박한 가정 50가구만 있다면 우리는 밥상에서 귀래리 채소들의 싱싱한 꿈을 매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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