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의 신학교 생활은 참말 재미있었다. 생전 처음 외국에서 외국인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거니와, 말과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다 너무나 다른 각양각색의 생활이고 보니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책에서나 읽고 알던 것들, 영화에서나 보고 알던 것들을 직접 대하고 살아보니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것 때문에 이런 차이점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신학생들은 대체로 영어를 쓰는 문화권과 불어를 쓰는 문화권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하나 더 붙인다면 중국 한문문화권이라 할까.
영어나 불어 문화권은 크리스찬이즘에 젖어 있지만, 중국 한문문화권은 크리스찬이즘과는 거리가 먼 전혀 다른 세상이 아닌가!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라 하더라도 월남은 프랑스의 속국이었으니 불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고,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도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요즘에도 한국이 이러니, 저러니 망발을 늘어놓는 일본에게서 덕 본 것이 무엇인가 싶다. 이미 지나갔으니 그만이겠지만, 이런 것도 그 당시에는 서러운 것 중의 하나였다.
이런저런 것을 극복하고 참다보니 신품을 받을 때도 다 되었다. 1957년 8월 15일(성모승천대축일), 우리 51명의 신학생들은 인류 복음화 성성(Cong. Prop. Fide.) 장관인 푸마죠니비욘디(Fumasoni Biondi) 추기경으로부터 가스텔 간돌포 별장에서 부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신품은 같은 해 12월 21일 울바노 대신학원 성당에서, 같은 성성 부성장인 시지스몬디(Sigismondi) 대주교로부터 받았다.
로마의 겨울은 우기다. 신품을 받는 날 아침 역시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렸지만 일주일간 피정을 끝낸 우리는 합창단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학교 성당으로 행렬하여 들어갔다. 예절이 진행되는 동안 너무나 마음이 들떠서 과연 내가 이 세상 사람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내가 지금 신품성사 예절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 것은 바로 모든 성인의 호칭기도를 바치며 제대 앞에 부복하여 있을 때 였다.
한분한분의 성인이름이 나올 때마다 「어머니 역시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계시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 이제 신부가 되는구나」 그리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버지께서 「성인신부가 되고, 남을 헤아릴 줄 아는 어진 신부, 주교님께 순명하고 교회에 성실한 신부가 되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나도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다짐을 했다.
같이 신품을 받은 51명의 새 신부는 46개국 사람들로 이루어졌지만 대부분 본국에서 참석하는 친지들이 없었다. 물론 한국에서 온 사람도 없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외국여행이 쉽지 않았고 돈도 넉넉지 못했을 것이다.
신품을 받은 후 다음 해 6월까지 학교에 머물다가 우리는 신학교를 떠났다. 대학원 때 신학 석사 논문을 썼기 때문에, 그 논문 제목으로 계속 박사학위까지 이수하려고 했으나 주교님께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라는 말씀이 계셔서 라테란 대학(Universita Laterano) 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그로부터 학부 4년, 대학원, 박사학위까지 합해서 7년이 더 걸렸다. 로마에 도착해서 14년 동안 공부만 하고 1965년 12월에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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