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수많은 인파가 바다로, 산으로, 강과 계곡으로 대이동을 한다. 설과 추석의 민족 대이동에 못지않은 엄청난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떠난다. 하지만 돈 쓰고 몸 써서 나선 피서길은 자주 더 많은 피로와 짜증으로 범벅이 돼 끝나곤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명상과 묵상을 통해 「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때로는 수도자에 못지 않은 혹독한 수련의 경험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면서 「마음의 피서」를 찾아나서는 이들의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매년 여름과 겨울 휴가를 받아 개인 피정을 해온 것이 벌써 3년째입니다. 주로 수도원들을 찾아서 피정을 하는데 일년 내내 그 힘으로 지내는 것 같습니다』
피서철마다 수도원으로 피정을 간다는 김영배(37.바오로)씨는 해마다 한두번씩 하는 피정이 이제는 몸에 배어 여름마다 인파에 시달리고 바가지 걱정을 해야 하는 여행지를 찾지 않아도 더위를 이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박3일 동안 휴가를 이용해 개인피정에 들어간다는 이병훈(28.베드로)씨는 『단체 피정은 규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며 『미사 참례 시간 준수나 대침묵 등 최소한의 규정을 지키면서 스스로 묵상과 자기 성찰을 갖는 개인 피정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종교 수련회의 경우 역시 대표적인 것은 불교 사찰에서 실시하는 참선 수련회다. 불교의 전통 사찰들에서 실시하는 참선 수련회는 일반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고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10년 전만 해도 불교의 수련회는 극히 일부 사찰들에서만 시행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사찰에서 실시하고 있을 만큼 대중화됐다.
일부 대규모 사찰의 수련 프로그램은 수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고 일정이 다가오면 대부분의 수련회들이 모두 정원이 차곤 한다. 특히 불교 수련회의 경우에는 불교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대거 참가하고 때로는 가톨릭이나 개신교 등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종종 불교 수련회에 참가한다고 한다.
수련회를 실시하는 사찰은 현재 전국적으로 15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개 참선을 중심으로 스님들과 거의 동등한 수련 자세를 요구하는 전통적인 수련 방식을 실시하는 곳과 각 사찰마다 특성을 살리고 어린이나 청소년 등 대상을 특화시켜 대중화시킨 방식으로 나눠진다.
전통적인 참선 수련회는 사찰의 기본 예절과 독경, 예불, 발우공양, 기초 교리 교육 등으로 이뤄지며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등 이른바 삼보사찰(三寶寺刹)을 비롯한 큰 사찰들이 채택한다. 새로운 방식의 수련회들은 고유한 사찰 프로그램 외에 원시 불교의 위파사나 수행, 전통 사찰 무예 등 다양한 수행 방식을 도입하고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자연친화적인 놀이나 체험 등 다채롭게 꾸민다.
그밖에 천도교에서는 전국 각지에 산재한 수련원에서 여름철 시천 주 수련을 실시하고 원불교에서도 훈련원이나 연수원, 교당 단위로 마음 공부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수련 프로그램이 있지만 일반인들의 참여는 사찰 수련회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처럼 각 종교의 신자들 뿐만 아니라 종교 수련회에 참여하는 일반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대 사회의 복잡하고 번잡함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위안을 얻고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싶은 욕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수년 동안 영성지도를 해온 한 사목자는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은 영적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고 자신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며 『그런 갈증과 욕구가 이러한 종교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동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 수련회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동양 사상과 동양의 수련 방법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이 일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특히 명상, 참선, 단학, 기공, 요가 등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들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동양적 수련 방법에 대한 관심은 현대인들의 건강에 대한 욕구와 맞물려 엄청난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이러한 수련법들은 과거 일부 수행자들의 전유물로서 「수행을 위한 수행」의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게 적응되고 따라하기 쉬운 형태, 즉 종교적 수행이 아닌 「생활을 위한 수행」으로 제시됨으로써 일반인들로부터 대중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기업체를 포함한 대규모 조직에서는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서 명상, 선, 요가, 마음공부 등 각 종교의 수련 방법을 원용한 수련 프로그램들을 실시하기도 한다. 젊은 여성들은 다이어트에 이들 수련법을 활용하고 여기에 착안한 의류업체에서는 요가복 등 전문 복장을 상품으로 내놓아 하나의 유행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이미 일상 생활을 통해 동양적 수련 방법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좀더 집중적으로 이러한 수련에 나서는 것이 종교 수련회에 대한 늘어나는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이 각 종교에서 마련한 수련회에 참가하는 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종교적 가치와 정신적 위안을 찾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우리 시대와 사회가 갖고 있는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따라서 종교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부응하는 위안과 안식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좀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자들조차도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의 수련회에 기꺼이 참석하거나 요가, 기 수련 등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현실은 과연 교회가 얼마나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적 영성 수련 프로그램 개발 절실
무분별한 타 종교 수행 참가 곤란
대중적, 토착화된 수련 방법 필요
서울의 한 사찰에는 가톨릭 신자들의 방문이 많아짐에 따라서 아예 이들을 위한 천주교용 묵상 음악 테이프까지 마련해 뒀다고 한다. 동양의 전통 종교와 수련 방법을 이용하는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닐지라도 기 수련이나 참선 등을 그리스도교의 기도와 혼동하기 시작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여름을 맞아 실시되는 사찰의 참선 수련회에 참가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자기 성찰을 넘어 불교 등 다른 종교의 수행법과 가르침을 가톨릭의 요소들과 무분별하게 혼동할 때 오히려 자기 정체성을 잃기 쉽고 이러한 수련회는 오히려 신앙에 해악을 가져오기 쉽다.
분명한 것은 가톨릭에서 신앙 수련의 중요한 장인 피정이 신자들에게도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각 성당에서는 전례 주기에 따라 각종 교육과 피정 프로그램들을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천편일률적인 성서 읽기, 체험 나눔, 간단한 그룹 작업 등에 그치고 있다.
최근 들어 피정의 집이나 수련원 시설들이 늘어나면서 피정 프로그램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풍부한 영성 전통을 일반 신자들이 접하기에는 대중화된 수련 프로그램이나 지도가 부족한 실정이다.
현대 사회가 정신적인 가치를 상실하고 있는 것과 비례해서 현대인들의 정신적, 영적 갈증은 더 높아진다는 것이 여러 조사를 통해 알려져 있다. 단지 신자들의 신앙 재교육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선교, 복음화를 위해서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그리스도교적 수련법, 영성적 전통에 바탕을 둔 대중적이고 토착화된 수련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대안은 역시 수도회들이 갖고 있는 각종 명상 및 관상 프로그램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영성 신학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그리스도교의 풍부한 영성적 전통은 수도회들 안에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신자들은 교회 안에 기 수련이나 참선을 능가하는 풍부한 묵상 및 관상 기도의 전통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물론 동양 사상과 종교의 수련 방법을 가톨릭의 영성 수련에 도입하기 위한 실험적인 시도도 일각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 열려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좀더 깊이 있고 적극적인 연구를 통해 신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성 수련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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