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성녀라 일컬어지는 「마더 데레사」가 창립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 영성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절명하시기 전 하신 말씀 「목마르다」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인간을 향한 사랑의 행위, 그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작은 자들을 위한 헌신의 삶으로써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목마름을 채운다는 의미다.
『가진 것이 많으면 베풀 것이 없다』고 했던 마더 데레사는 「그 어떠한 부(富)도 피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회원들 역시 「고통이 뒤따르지 않는 활동은 사회사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가장 가난한 모습 속에 투영돼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완전한 신뢰와 자아 포기, 그리고 항상 기뻐하는 정신으로 함께 나누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끝없는 목마름을 채워드리기 위함이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위해 일하고, 그분을 간호해 주고, 먹을 것을 주며, 옷을 입혀주고, 그분의 고통에 동참하면서 그분을 방문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란 단순히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사람, 알코올 및 마약 중독자, 삶의 희망과 신앙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 성령의 힘 안에서 희망을 갖지 못한 모든 이들을 뜻한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지만 가난한 이들 속에 뛰어들어 그들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용기, 또 그러한 상황에서 더욱더 강인한 의지를 지닐 수 있도록 한 힘은 마더 데레사가 항상 모든 사도직 활동의 최우선에 두라고 강조했던 「기도」에서 비롯됐다.
▲ 사랑의 선교수녀회를 창립한 마더 데레사 수녀가 생전에 인도 캘커다의 한 병원을 방문, 어린 환자와 담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6일 캘커타에 도착하여 1931년 5월 24일에 「예수의 작은 꽃」으로 알려진 리지외의 데레사를 수도명으로 택하였다. 이후 데레사 수녀는 비교적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성 마리아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쳤으며, 1944년부터는 교장직을 맡는 등 18년 동안 교편생활을 하였다.
1946년 9월 10일, 피정차 히말라야 산기슭의 다르질링으로 향하던 열차 안에서 그녀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 계신 주님을 섬기라」는 또 다른 부르심을 받게 됐다.
그러한 부르심은 힌두이즘이라는 종교 전통과 카스트 제도로 전체 인구의 30%가 절대 빈곤층인 사회현실 속에서 불공평, 사회적 무관심으로 거리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빈민들 모습에 사랑과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데레사 수녀는 「일을 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다」라는 강한 확신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려는 원의를 총원장 수녀에게 밝혔고 그로부터 1년 반 만인 1948년 4월 12일, 재속 수녀로서 빈민들을 위한 활동을 허락한다는 교황청 뜻에 따라 사랑의 선교수녀회를 시작했다.
「사랑의 선교수사회」(1963년)「협력자회」(1969년) 「사랑의 선교 관상수녀회」(1976년) 「사랑의 선교 관상수사회」(1979년) 「사랑의 선교 사제회」(1984년)등이 데레사 수녀에 의해 창립, 같은 영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