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녀의 동거를 다룬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여자 연예인들의 누드 화보집 출간은 더 이상 화젯거리도 아니며, 하루 낙태시술 4천∼5천여 건이 이뤄지는 2003년의 대한민국.
「성」에 관한 한 이미 뜨거운 용광로처럼 달궈진 한국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의 「성」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나, 정작 나의 성은 감추기 바쁜 터에 흥미로운 책이 하나 출간됐다. 책제목은 「성을 말하다」(크리스토퍼 스팔라틴 외/황애경 옮김/부키/200쪽/8500원). 남의 이야기가 아닌, 저자 자신들의 「성」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시중에 성담론을 담은 책은 여럿 있지만, 이 책은 성에 대한 저자들의 솔직한 생각과 경험들은 물론 성과 결혼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 담겨있는데다 일반인들도 꺼내기 어려운 주제를 성직자가 풀어냈다는 점에서 한 발 앞서 있다.
38년 동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 크리스토퍼 스팔라틴 신부(예수회)는 그의 휠링대학교 후배이자 이 책의 공동저자인 미국인 부부 제임스 알렌 주니어.잰 스쿤메이커 알렌과 함께 경쾌하고도 발랄한 문체로, 어쩌면 인간의 영원한 문제랄 수도 있는 「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명쾌하고 직설적으로 풀어놓았다.
책에서 세 명의 필자는 성에 대한 12개의 주제에 대해 자신들의 성적 경험을 파격적일 만큼 솔직하게 고백한다. 예를 들어 『처음 성을 자각했을 때?』란 질문에 제임스는 열 살 무렵 누드 잡지를 보고 느꼈던 흥분과 죄의식을 술회하고, 잰은 동성과의 애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또 혼전 성관계에 대한 유혹을 고백하면서 『그 당시 혼전 성관계를 갖지 않고 준비하고 기다렸기에 결혼 후에도 변치 않는 신뢰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책은 단순한 경험담 기록에 그치지 않고 「성의 의미」나 「혼전 성교」, 「성과 윤리」 같은 주제에서는 깊이 있는 사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토론을 위한 질문」이란 항목으로 독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어, 특히 청소년들의 성토론 교본으로 삼을 만하다.
스팔라틴 신부는 서문에서 『이 책은 체험과 성찰을 기반으로 우리의 의견과 사상, 확신을 담은 것』이라면서 『책을 통해 다양한 성담론이 전개되어 우리 사회에 성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이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1940년 크로아티아 출신인 크리스토퍼 스팔라틴 신부는 예수회에 입회해 1965년 서강대 교수로 부임했으며, 1971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품됐다. 그는 1983년 서강대에서 「결혼준비특강」이란 교양 강좌를 개설, 성에 대한 갖가지 문제를 토론식 수업으로 진행하는 강의를 20년째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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