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에는 인간이 있고 영혼이 있고,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관이 농축돼있다. 문인으로 살아오면서 정리한 감정들과 지나온 삶의 성찰들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안에서 얻어낸 인생의 지혜도 넉넉히 자리잡고 있다. 「원로」라고 명하기엔 아직 너무나도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그런 다섯 원로들의 주옥같은 에세이가 모여있다.
▲ 김남조
▲ 김후란
▲ 박완서
▲ 전옥주
▲ 한말숙
『망각이야말로 삶 속의 죽음이며 생명의 배덕(背德)이다. …날이 선 단도가 막 생살을 긋고 지나간 정결한 아픔이 차라리 소원이다. 아픔이 어떤 것인가를, 불면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금 실감하고 싶다. …어떻게 해도 기가 꺾이지 않는 열정으로 가슴을 채우고 싶다』(김남조). 시인 김남조씨는 삶의 고통과 이를 통한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노시인에게 있어 「열정」은 여전히 삶의 근원이자 행복이다.
김후란 시인은 우리 주변의 잔잔한 일상을 노래한다. 나무 한 그루와 새 한 마리, 신선한 아침까지…. 그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감사의 대상일 뿐이다. 인생의 모든 이치를 달관한 모습이 느껴진다.
『내 손자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남아 있다면 솜이불 정도가 아닐까.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모르다가 어쩌다 뼛속까지 시린 날이 있으면 생각나서 꺼내 덮을 수 있는 솜이불 한 채쯤이고 싶다…』(박완서). 소설가 박완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인간 본연의 도리에 대한 깨우침으로 연결시키는 특징을 지녔다.
이밖에도 희곡작가 전옥주씨의 글에서는 성실하지 않는 현대인들과 한치의 양보 없는 세상물정을 야멸차게 꼬집는 듯 한 비판이 보이며, 소설가 한말숙씨의 산문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앞으로의 문학 인생을 되새겨보는 성찰이 담겨 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책 향기가 오랫동안 머무는 향기로운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