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동두천 외곽에 살고 있는 이성숙(가명, 31)씨는 두 아이 용훈(8), 해성(5)이와 이어가는 삶이 하루하루 버겁기만 하다. 좁은 골목길을 한참이나 올라가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려야만 근근히 들어갈 수 있는 창고를 개조한 집에서 살고 있는 이씨 가족의 한달 생활비는 고작 40여만원.
어머니로부터 3대에 걸친 이씨네의 이런 고단한 삶은 단지 이씨의 아버지가 미군이었고 이씨가 혼혈인 1세라는 사실에서 비롯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떠나버린 아버지 때문에 20살이 되도록 호적조차 갖지 못했던 이씨는 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체념과 절망 속에서 목숨을 이어온 것이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서조차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들으며 자란 이씨는 친구가 「까맣다」며 던진 돌로 실명 위기에 처한 적도 있다.
최근 한 인기 여자연예인이 자신이 혼혈임을 밝힘으로써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혼혈인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화, 세계화를 부르짖는 우리 사회가 지닌 아픈 단면을 드러낸 사례다.
혼혈인협회에 따르면 90년대 동남아 노동자들이 몰려들면서 현재 주민등록증을 가진 코시안(KOSIAN.코리안+아시안)은 1만여명. 90년대 5000명 정도이던 미국계 아메레시안도 2만명을 넘었다. 또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혼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지난 한해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권 출신의 외국인과 결혼한 경우는 총 2798건에 달했다.
안양 전진상복지관 이금연(세실리아. 43) 관장은 『이런 추세로라면 10년 후 이들 가정에서 태어나는 코시안 수가 10만명을 넘어 「신 혼혈인」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혼혈인의 현실은 각박하기만 하다. 펄벅재단이 2001년 재단에 속한 혼혈아동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의무교육인 초.중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혼혈아동이 무려 26.9%에 달했다. 혼혈아동 1세의 경우 83%가 편모 슬하에서, 나머지 17%는 조부모나 이웃들이 양육하고 있었으며, 양친과 살고 있는 아동은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지촌 여성지원단체인 새움터에 따르면 성인 혼혈인 가운데 약 30% 가량은 실직 상태이며 직업이 있더라도 건설노동자 등 일용직이 대부분이어서 혼혈인문제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회 내에는 혼혈인을 위한 사목기관은 고사하고 체계적인 연구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외국인노동자 관련기관에서 진학, 취업 등 혼혈인과 관련된 사안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임시방편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허윤진 신부는『국제화가 진행되면서 이주노동자 문제와 함께 혼혈인문제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밝히고『혼혈인문제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줄 시금석』이라며 의식전환을 호소했다.
이주노동자 관련단체 한 관계자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혼혈인 2세가 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도 한 민족 한 형제로서 제자리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혼혈인들이 교회 내에서 올바른 위상을 찾아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목 방향과 뒷받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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