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 주님께서 여기 계셨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창세 28, 16). 원고를 준비하던 중 만난 성서 구절이다. 참된 지혜는 「자각과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하고, 지금 그런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두 주에 걸쳐 지혜운동의 시작에 주목해 왔다. 「궁중」, 혹은 「가정」이 지혜문학 태동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고, 이스라엘 지혜운동의 제도적 형성은 솔로몬의 지혜정책에 의존한 것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 밖으로 관심을 옮겨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의 지혜가 예루살렘 왕실학교에 근거를 두고 발전한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학교의 자료들 안에는 당시 외국에 만연해 있던 지혜 전통이 통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지혜
이집트의 「지혜 문화」란 수천 년 내려온 이집트의 거대한 관료체제를 움직여온 단초였다. 우리나라의 행정고시, 사법고시, 각종 고시를 거친 인재들이 정부 핵심 부서에 스카우트 되듯이, 이집트 궁정학교는 인재를 등용하는 가장 기본적 관문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궁중학교에서 배우게되는 문헌들은 약 2500년 간에 걸쳐 전해져 온, 가르침과 교훈을 수록한 작품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세바이트」(규범집, instruction)이라고 불리는 이 교재들로는, 현재 파타호테프의 교훈, 아멘엠오페트의 교훈, 메리카레의 교훈 등이 전해져 오고 있고, 모두 구약 잠언서와 유사한 근면, 정직, 책임성, 자기 통제력, 시의 적절한 언어와 행동, 상관, 여인, 친구와의 관계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옛 지식인들이 보던 서적들(사서삼경을 비롯한)이 담고 있던 책들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이집트의 지혜문학은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궁중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잠언 22, 17~24, 22은 아멘엠오페트의 30개 교훈을 반영하고 있다.
바빌론의 지혜
이집트의 경우처럼 메소포타미아의 지혜운동도 기원전 3000년경에 이미 만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훈-교양적 내용을 주축으로 삼고 있던 이집트의 지혜문학과는 달리, 메소포타미아의 지혜 전통은 마술적-주술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었다. 즉, 바빌론의 학자(지혜자)들은 제의적-마술적 지식의 전문인들이었던 것인데, 이는 당시 엘리트들의 사유방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추구한 가장 절대적 지혜는 신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즉 신의 지혜를 얻는 것 보다 더 확실한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없으며, 이러한 신의 지혜는 「주술」이라는 기술을 통해 인간에게 통교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지혜운동이 이러한 외국 지혜 전통과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그 안에서 뿌리박고 있던 강한 「종교적 신념」이라 하겠다.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언 1, 7)이자 「지혜의 근본」(잠언 2, 6)이라는 것이 이스라엘 지혜의 가장 기본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즉, 다신교적 사고를 갖고 있던 외국의 지혜운동을 이스라엘은 「야훼이즘」이라는 그들 고유의 신앙으로 용해시켜 토착화하였던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 온갖 대상과 세계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바른 지혜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 이스라엘이 추구한 지혜의 참 모습이었다.
『자기가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물고기는 드물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현재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단적으로 제시하여주는 문장이다. 이처럼 지혜(하느님)는 물,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늘 「드러나」 있는 「친숙한」 것이지만, 이를 자각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드러나 있지 않은」, 「낯선」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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