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다양한 이유로 목숨을 끊는 이들 소식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자살이 일상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러한 자살 분위기가 도미노 현상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마약처럼 번져가고 있다는 면에서 보다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현황
경찰청 통계청에 따를 때 지난 한해 총 자살자는 총 1만3055명으로 하루 평균 36명, 시간당 1.5명이 세상에서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이같은 수치는 2001년 1만2277건에 비해 6.3% 증가한 것이고 자살자가 급증했던 1998년 외환위기 직후의 1만2458명 보다도 늘어난 것이다. 특히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2000년 786건에서 2001년 844건 2002년 986건으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사회의 자살률은 지난해 2002년 OECD 소속 25개 국가를 대상으로한 WHO(세계보건기구)조사에서도 헝가리 일본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에 이어 10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청소년 자살률은 드러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아마도 세계 최고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실존적 문제로 인한 자살자가 많은 유럽 국가들과 달리 「비관」 「병고」가 자살 원인의 70%를 차지하는 등 사회 경제적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김순덕 교수팀이 발표한 1983~2000년 인구 10만명당 연도별 자살률과 실업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간 상관관계 분석 결과는 눈여겨 볼만하다.
이 조사에서 자살률 대비 실업률은 82.6%의 연관성을 보였고 조사기간 자살률과 경제성장률은 전체적으로 81.5%의 연관성을 나타냈지만 경제활동이 가능한 20세 이상 자살률의 연관성은 86.5%를 기록,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불경기와 빈부격차 확대로 빈곤층과 실업자, 신용불량자가 늘면서 덩달아 자살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원인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속 성장과정에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데다 IMF 이후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산술적 계산으로 희망을 찾기 힘들어진 사회구성원들이 삶을 포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교회내 윤리신학자들 역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주의와 황금 만능주의의 가치관 속에서 살아왔던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라면서 『삶의 지주로 삼았던 물질적 풍요가 경제적 위기에 의해 붕괴되자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고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단편적 사고관과 가치관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김정우 신부(대구 용계본당 주임)는 『30~50대까지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 개발이라는 목표하에 경제성장을 거치며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쉽게 물들어 왔다』면서 『그들의 자살은 그런 면에서 우리 시대 가치관과 삶의 구조가 잘못돼 있음을 증명한다』고 진단했다.
교회가 보는 자살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자살을 부당한 행위로 선포해 왔다.
첫째 십계명 제 5조의 「살인하지 말라」는 내용을 직접 어기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자기 자신을 죽이거나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의 모든 형태는 직접 살인에 해당, 자살 그 자체가 「죄」라고 보았다.
또한 생명에 대해서는 하느님만이 절대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입장에서 자살을 반대한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와 생명에 대해 주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근거에서다.
현실 생활을 하는 동안 하느님께로 받은 소명을 봉사의 정신과 자기 희생 정신으로 보존하려 들지 않고 그 의무를 저버리는 것과 함께 사회적인 대인관계에서의 공동책임과 서로의 영향 등을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라는 점에서도 자살에 대한 교회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윤리신학자들은 『자살은 영웅심과 다르며 자기의 과거를 보상한다거나 속죄하는 뜻에서 죽음을 택할 수 없다』면서 『죽음은 자기 자신이 가져야 할 의무, 행할 수 있는 협조 등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예방 대책
자살 예방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살이란 일종의 「도움을 요청하는 절규」임을 인식하는 것』이라면서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괴로우니 자신을 도와달라고 최후 방법을 사용, 의사표시를 하기 때문에 이 점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모은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혜남 박사는 『자살에 대한 보다 냉정한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오죽했으면」식의 감상적 접근이나 개인적 문제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치유법이나 대처방안을 찾도록 해야하며 자살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이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위기 개입 프로그램 마련, 자살 예방 핫 라인 설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우 신부는 『많은 경우 죽음이 사회적 죽음의 결과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교회는 이기주의적 개인주의화된 세상 안에서 자살을 방지하는데 노력할 임무가 있다』고 전하고 『구체적으로는 윤리교육 및 생명 존엄성과 신성 불가침성을 강조하는 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신부는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에 찬 관심만이 자살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하고 『정신 질환이나 심리적 불안정 요인을 치료할 수 있도록 이웃을 돌볼 필요가 있으며 사회적 측면에서는 노동 조건의 개선, 소외계층의 사회복지적 배려 등에 신경을 써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자살에 대한 잘못된 믿음들
1.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
자살자 10명중 8명은 자살 전에 자살 의사를 표현한다.
2. 자살하는 사람들은 정말 죽기를 원한다
자살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죽기를 원하는지 아닌지 혼동스러워한다. 자살은 비극으로 끝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다.
3. 우울증이 좋아지면, 자살 위험성은 사라진다.
자살의 위험성은 우울증의 회복기에 놓아진다. 우울했던 사람이 갑자기 명랑해 지거나 주변을 정리하면 자살의 위험성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4.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면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자살에 대한 생각을 없애도록 해야한다.
만일 누가 자살 사고를 이야기하면 심각하게 들어주고,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할 수 있는 도움을 다 주어야 한다.
■ ‘벼랑 끝 사회’대안 발표한 이태수 교수
“가난한 이들 자립 도와야”
▲ 이태수 교수
최근 잇따르고 있는 자살과 「묻지마 살인」 등으로 「사회안전망」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 이태수(베드로) 교수는 신앙인들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기존의 사회시스템만으로는 담아내기 힘든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7월 23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긴급토론회에서 「벼랑 끝 사회, 사회안전망을 점검하자」를 주제로 발표한 이교수는 최근의 사례가 전형적인 빈곤층이 아니라 중산층 또는 서민층이 급격히 몰락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이들을 극도의 생활궁핍에 시달리는 「벼랑끝 계층」이라고 진단하는 이교수는 이들의 존재가 우리 시대가 바라봐야 할 시대의 징표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벼랑끝 계층」의 자살은 개인적 차원의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타살」이며 곧 사회적 양심의 죽음』이라고 강조한 이교수는 『적절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사회적 타살」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IMF라는 호된 시련 속에서 한때 제도화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다 흐지부지되고 만 고용창출 방안이나 「아나바다 운동」 등이 오늘의 부조리한 현상과 궤를 같이하며 또 다른 위기를 낳고 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이교수는 전국민을 위한 보편적인 복지체계의 수립과 사회복지비의 지출비중이 가장 높은 선진국형 재정지출 구조로의 근본적인 전환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을 위한 성장」 기조를 확립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런 도정에서 교회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부각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조차 이웃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을 새롭게 구현할 때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지역공동체를 이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교수는 교회가 본당을 중심으로 펼쳐오고 있는 사회복지 활동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물이나 생활보조비 등으로 빈곤계층을 지원하거나 가정을 방문해 의료·상담 등의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립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를 선도해온 가톨릭교회가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교수는 ▲교구나 본당 차원의 기금 조성을 통한 가난한 이들의 자립 지원 ▲본당 차원의 위기 지원센터 설립 등을 제안한다.
『힘든 때일수록 더욱 고통받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될 때 나눔은 연대와 사랑의 정신을 넓히는 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