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난 사과를 잘 먹지 못했었다. 문제는 나만 안 먹으면 될 사과를, 괜히 남까지 못 먹게 하고, 말을 잘 안들을 때는 화를 내거나 작은 주먹을 휘둘러 폭력을 행사한다는데 있었다. 모든건 다 「백설공주」 때문이었다. 백설공주는 계모가 준 독사과를 먹고 저주에 빠지게 되는데, 이 충격적인 장면을 읽은 이후, 나는 더 이상 사과를 먹지 못했던 것이다. 당연히 목에 걸릴까봐였고, 나와 백설공주를 혼동한 못 말릴(?) 공주병 때문이었다. 물론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사과 먹는 것을 참지 못했던 것은, 지네들이 무슨 백설공주라고,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과는 백설공주와 백설공주 「같은」 나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주제와 관련되어 해야될 이야기는 다음부터다. 공주는 사과를 깨물고 이내 독이 퍼져 죽음 같은 깊은 잠에 빠지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왕자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신을 궁으로 옮겨가게 되고, 잘못하여 관이 움직이면서 공주 목에 걸린 사과가 튀어나오게 된다. 거짓말처럼 그녀는 살아난다.
나는 이 장면이야말로 삶의 속성에 대한 적절한 은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그것 때문에 죽기처럼 힘든 무엇을 목구멍 깊이 박고 살고 있지만, 그 고통은, 목에 걸린 사과를 순간에 토해내듯, 그렇게 어느 순간, 단번에, 그토록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흔하고 진부한 일상 속에 스며있는 「하느님의 지혜」(진리)를 발견하느냐, 못하느냐, 에 있다고 하겠다. 하느님의 지혜를 발견한 자는 숨을 죄어오던 독사과를 토해내듯, 자기 삶의 어두운 끝자락을 끄집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문학에 대한 입문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이제 우리는 지혜문학이 말하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다루게 될 주제들 중, 단 한가지라도 우리 목에 걸린 사과를 빼어내 주는 구원의 도구로 작용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마음이다.
성서가 언급하는 지혜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지혜를 동일개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의 지혜를 일정하고 고정된 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성서가 언급하는 지혜는 매우 다각적이고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탁월하고 명료한 인식을 지혜라고 간주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대 근동의 지혜는 「우주의 순리에 순응」 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신앙」과 연결시켜, 「지혜」는 「하느님 뜻에 대한 순응」이라 이해한다. 즉,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를 투철히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지혜문학이 제시한 「지혜」였던 것이다. 지혜문학 「오경」이라 불리는 잠언, 욥, 코헬렛(전도서), 지혜서, 시라(집회서) 역시 공통적으로 이러한 주제를 부각시킨다. 즉, 세상에는 일정한 법칙을 따라 삼라만상을 다스리고 지탱해 나가는 신적이고 우주적인 지혜(호크마)가 존재하고, 이에 순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정을 한번 해보자. 여름에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으면서 날씨가 왜 이렇게 더워, 하는 사람은 당연히 지혜롭지 못하다. 매운맛을 빼면 시체인, 「매운탕」을 먹으면서 왜 이렇게 매운거야, 하는 사람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느님이 마련하신 질서에 위배되는 생각과 평가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결국 「불평」이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과 삶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오는 어리석음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주어진 삶의 현상과 조건에 대한 적절한 긍정, 그리고 이를 하느님의 뜻하심으로 보고 타인과 자신을 포박하지 말기. 바로 지혜문학 작가들이 제시했던 지혜인 것이다.
백설공주 이야기를 통해 얻은 또 다른 지혜 하나. 어렸을 때는 아무 동화책이나 보여주면 안 되요. 사과 먹는 다른 친구들을 못 살게 굴 수도 있으니까. 그럼 어른이 된 다음에는 상관없지요. 단 공주병 증세를 보이는 어른들은 안 된답니다! 저요? 지금은 사과 잘 먹습니다. 없어서 못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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