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바야흐로 가을에 접어든다」는 입추(立秋)였던 8월 8일. 하지만 가만히 서 있어도 온몸에 땀이 주르르 흐를 만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이날,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서 춘장대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21번 국도를 찾았다. 1999년 완공된 남포방조제를 지나 자동차로 10여분을 달렸을까. 푸른색 티셔츠를 입고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행렬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마련한 「2003년 청년도보생태기행」의 참가자들이다. 이들은 이날 정오 대전교구 대천 요나성당을 출발해 25km 가량 떨어진 춘장대 해수욕장을 향하고 있었다. 대천-서천-군산-김제-부안-새만금으로 이어지는 133km, 6박7일 여정의 첫째 날이었다.
방금 지나온 남포방조제에서는 그나마 시원한 풍경과 바닷바람이 일행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하지만 아스팔트 포장의 국도로 접어들자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자동차 소음, 그리고 매연이 걷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
「왜 걷는가?」
40여분 가까이 걷던 일행이 도로 변 갓길에서 휴식을 가졌다. 그저 행렬을 따라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었다.
『매스컴에서 환경파괴, 환경파괴하고 말들을 하는데 그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동섭(베드로.48)씨는 방조제에 널린 쓰레기들을 보며 갯벌을 망가뜨린 문명의 이기 위에 인간들은 또 나쁜 짓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환경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이일우(베르나르도)씨는 『이론적으로 많이 공부했지만 환경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며 『특히 이렇게 걸으며 자동차를 탈 때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들꽃들, 그리고 방조제에 가려져 있던 바다와 갯벌생명들을 직접 봄으로써 환경의 중요성을 재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3 청년도보생태기행」은 종교를 불문하고 보편적인 기도방법으로 자리한 도보를 통해 인간의 편의로 파괴되어 가는 자연의 모습을 속속 들여다보고, 하느님의 피조물인 대자연의 중요성을 깨닫는 기회를 마련코자 올해 처음으로 열린 행사. 특히 서울 환경사목위원회는 새만금 갯벌 문제가 화두로 자리한 상황에 맞춰 수많은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이 파괴되었고 지금도 파괴가 진행중인 서해안 해안선을 도보코스로 선택했다.
10여분간 휴식을 마친 일행이 다시 걷기에 나섰다. 도로변 하수구에는 인근 모텔에서 흘러나온 온갖 폐수로 악취가 진동하고, 갯벌을 죽이고 들어선 부사방조제에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가 가득했다.
하지만 일행은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자동차로 휙 지나가면 미처 보지 못할 풀꽃의 생명력과 흙의 역사, 바람의 노래들이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 살아있음을 몸으로 느끼는 일행의 발걸음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낮에는 걷고 밤에는 환경.생태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으며 생태기행을 계속한 이들은 8월 13일 새만금 갯벌에 도착하는 것으로 모든 도보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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