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생명체의 두 가지 강한 힘으로부터 은총을 얻어 어느 신비적인 합류점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신자의 특성인 재속성안에서 살며 그 재속성은 실로 하느님께 봉헌된 것입니다. 봉헌된 당신들은 정신적이며 종말적인 가치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자로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1972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재속회 총장에게 주신 말씀).
성모카테키스타회는 「주님의 복음이 만민의 것이 되기를」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사도직을 행한다. 특히 교회가 아직 뿌리를 깊이 뻗고 있지 않는 사회나 국가, 즉 포교지에서의 선교, 사목에 협력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재속회 성격을 지닌 성모카테키스타회는 일반 수도회와 달리 「회」(會)의 입장에서 활동을 벌이지는 않는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공소, 학교, 유치원, 사회복지 관계, 사무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자신의 전문직을 가지고 사회와 관계를 가지며 활동하고 있다.
그렇게 사회가 필요로 하는데 따라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활동일지라도 「세상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바꾼다」는 카테키스타(교리교사)의 사명으로 활동한다.
회원들은 그리스도안에 특별한 가족으로서의 공동체를 이루어 활동하며 생활 현장과 조건에 따라 혼자 생활을 하느냐 혹은 다른 회원과 함께 공동 생활을 하느냐가 결정된다.
복음적 권고에 따라 정결, 청빈, 순명의 서원과 사도직에 전 생애를 봉헌할 것을 서약하는 이들은 또한 세속에 살면서 누룩과 소금과 같이, 세상이 내면에서부터 그리스도적인 쇄신이 되어가도록 노력한다.
한국에서 성모카테키스타회 진출이 이뤄진 배경에는 몇몇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창립자 게마인더 신부는 진작부터 한국에서 성모카테키스타회 회원이 탄생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당시 회가 운영 중이던 교리신학원에는 한국 유학생도 있었고 또한 독일에서 유학중인 일본 회원 기숙사에도 한국 유학생들이 몇명 있었다.
그 회원들은 한국 유학생들과 생활하는 동안 매우 인상적인 일을 경험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희생됐을 때 그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 학생들이 『우리들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며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며, 『한일간의 역사 앞에 자기는 어떻게 처신을 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 회원들에게 육영수 여사의 암살 사건은 한국을 보다 더 가까운 나라로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 교리신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졸업생들로부터 한국에서도 재속회가 해야할 활동이 많을 것이라는 권유를 받게되었다.
이런 일들과 김수환 추기경 초청으로 인해 1982년부터 한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성모카테키스타회는 1986년 5월 4명의 한국 자매가 첫서원하는 결실을 맺었고 1994년 2월에는 3명의 회원이 종신서원식을 가졌다.
지난해 4월 한국진출 2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했던 성모카테키스타회 한국지구는 2003년 1월말 현재 4명의 기초양성기간자, 17명의 영구봉헌자(종신서원)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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