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장미비, 스물넷의 약속」이란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성녀 소화 데레사의 삶에 대해 일기형식으로 쓴 전기로서 하느님께 응답한 그녀의 열정과 사랑을 평이한 글로 적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진정한 「삶의 원천」에 이르고자 길을 찾는 사람들을 목표로 하기에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삶의 원천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두 가지 부분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업적보다는 사랑을 우선한 성녀의 마음이었습니다.
『사랑은 업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지 사랑을 통해서만 보답할 수 있다』 『사랑으로 이룬 작은 일은 종종 커다란 업적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외적인 업적으로 인간을 판단하고 그 결과 인간 소외를 가져오는 현대의 물질문명이 가야할 진정한 길을 보여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분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작은 일들에 대한 가치를 눈뜨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사실 데레사 성녀의 삶은 외적으로만 본다면 그리 특징적이지 않습니다. 책에서도 나옵니다만 1903년 어느 신부가 데레사 수녀의 시성 청원을 위해 가르멜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수녀들은 그의 의견을 듣고 아연실색합니다. 그리고 원장 수녀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꾸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많은 가르멜 수녀들이 시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이 말이 데레사 성녀의 삶을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데레사 수녀가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외적인 업적으로 설명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수도회를 창설하거나 개혁하지도 않았고, 신학적 업적을 남긴 분도 아닙니다. 그리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어떤 기적이나 예언을 하신 분도 아니고, 놀라운 방법으로 하느님을 체험한 분도 아닙니다. 또 선교와 사목현장에서 설교하거나 가르침을 베푼 인물도 아니요, 외적인 명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요, 인간적 약점과 욕심을 그대로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이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매일 당하는 작고 어려운 일들, 일상생활에서 너무 흔히 일어나기에 아무도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눈길을 주지 않은 일상적인 작은 일들을 통해 사랑을 실천했고 그러한 작은 길을 통해 위대한 거룩함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점이 어느 신부님의 말마따나 현대의 신앙인들이 이루어야할 거룩함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떻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어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신학교 시절 가졌던 푸르른 마음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사제 생활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먼저 삶의 원천인 그분께 돌아가야만 한다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생명의 빵에 대한 결론 부분으로 성체성사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여러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51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54절).
여기서 요점은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이해하기가 그리 쉬운 부분은 아닙니다. 때로는 유다인들처럼 『어떻게 이 사람이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52절)라고 항변하고 싶어지기까지 하는 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이해로 접근해야할 부분이 아니라 신뢰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 말씀인데 머리로만 이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삶에는 이해보다 신뢰와 실용이 우선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분명한 사실은 저는 컴퓨터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자판을 치면 글이 써 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용함으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감기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여 감기를 낫게 하는지 하는 문제는 소수의 약리학자들의 몫이지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의 몫은 아닙니다. 다만 약을 복용할 때 결과는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성체성사의 신비 앞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해에 앞서 예수님의 살과 피인 성체와 성혈을 믿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구원의 양식이요 원천임을 믿고 고백하고 받아 모시는 삶. 이러한 삶이 예수님 앞에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요,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을 보증해 줄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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