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작업을 통해 하느님 체험을 나눔으로써 몽골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진한 향기를 전합시다. 우리가 여기에 온 첫째 목적은 「나누는 삶」을 위해, 둘째는 「베푸는 삶」을 위해서 입니다』
봉사단을 이끄는 살레시오회 박경석 수사는 몽골에서의 첫날 작업 수칙을 이렇게 선포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봉사자 모두가 박수사를 중심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짧은 기도에 이어 파이팅을 외친다.
오전 9시. 작업이 시작됐다. 이날 벽돌 작업, 토목 작업, 도로 작업에 동원된 봉사자는 30여명. 그 중 여학생 수가 절반을 넘었다. 벽돌 작업은 시멘트와 모래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집 짓는데 쓰일 5000여장의 시멘트 벽돌을 찍어내는 일이다. 공사판의 잡역부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사랑의 집짓기」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봉사단의 손놀림을 재촉한다.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어색하고 좀 쑥스럽긴 했지만, 숙련된 기술이나 오랜 경험이 요구되지 않고, 튼튼한 팔다리에 겸손한 자세만 갖추면 되는 일이라 이내 익숙해졌다. 대학생 이석주(루가.21)군은 『진정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며 『앞으로 세계 오지를 다니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 퇴비로 사용할 톱밥을 리어카에 담고 있다.
▲ 집 짓는데 쓰일 시멘트 벽돌을 5000장이나 찍어야 했다.
▲ 토목 작업팀이 염소 우리를 만들고 있다.
한낮의 더위가 한 풀 꺾일 무렵, 기다리던 간식 시간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가져간 초코파이에 양젖으로 만든 아롤(요구르트), 바슬락(치즈), 타락(겨울용 저장유제품) 등이 곁들여졌다. 첫날 냄새만 맡아도 얼굴을 찌푸리던 그들이었지만, 이젠 서로 더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겨우 3일 지냈을 뿐인데도 몽골 음식에 정이 흠뻑 들어버렸다. 수십 마리의 파리가 앉았다 일어난 그릇에 식사를 하고, 며칠동안 씻지 못해 땀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봉사단은 이제 개의치 않는다.
나무 그늘 하나, 앉아 쉴 수 있는 간이 의자 하나 없는 상황에서 어제 저녁 늦게까지 일에 시달려 피곤함에 절어있을 텐데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무질서와 피로 속에서도 봉사단은 「고통」보다는 「행복」을 느낀다. 무엇이라도 돕겠다고 새벽부터 일어나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몽골 어린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에는 뿌듯한 기운이 차 오른다.
열흘이라는 시간은 역시 짧았다. 어느덧 8월 5일. 몽골 땅을 떠나려니 그 동안 기거했던 12동 게르에 자꾸 눈길이 갔다. 솔롱고스의 청년들이 이룬 열흘 동안의 땀방울로 인해 이곳은 이제 거의 공동체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며 악수를 청하는 현지인들을 뒤로하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
그들이 흘린 땀에 나는 그저 몇 방울을 보탰을 뿐인데도, 서울로 돌아오는 기자의 몸과 마음은 어느 때보다 상쾌해져 있었다. 「2003 몽골 청소년들과의 희망 일구기」. 그것은 노동도 봉사활동도 아닌, 정녕 양국 청소년들이 만들어낸 「작은 축제」였다.
■ 국제청소년봉사지원단 양선영양
“더불어 살아가는 삶, 그 소중함 깨달았어요”
▲ 양선영양.
살레시오회 돈보스코 정보문화센터 학생 자격으로 국제청소년봉사지원단에 참가한 양선영(안나.17.서울 계성여고 1년)양은 『한국에서 언론을 통해 느끼던 가난함과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데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처음에는 돌아가고 싶어 눈물도 났다』며 그러나 『봉사활동을 통해 나 자신의 교만함과 이기심을 버릴 수 있게 됐고, 또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어 더욱 감사하다』고 말했다.
선영양이 열흘 동안 참여한 작업은 벽돌 만들기. 처음 해보는 일이라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으나, 한국의 당찬 여고생은 하루아침에 벽돌공으로 변신해 봉사활동에 첫 발걸음을 당당히 내디뎠다.
『처음 이곳을 방문할 때에는 「나 같은 어린 여고생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반신반의가 컸어요. 그러나 벽돌 만드는 과정을 하나 하나 배워가면서, 또 제 힘으로 첫 벽돌을 완성해 내면서 제가 몽골 어린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했어요』
선영양은 『낯선 이국땅의 선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는 이호열 신부님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며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평신도 선교사로 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선영양은 또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어 현지인들과 개인적인 친교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면서 『기회가 허락된다면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아와 몽골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며 봉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