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의 창설자 루이 쇼베 신부는 자신의 사상과 가르침을 담은 단 한쪽의 문헌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영성과 가르침은 오직 구두로, 또는 행동과 생활 방식을 통해 파악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영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이삭을 줍는 자세였다. 당시 수많은 수도 공동체들이 설립되고 운영됐지만 쇼베는 그런 큰 수도회들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작은 곳에서 자신의 소명을 실천했다.
여기에 자신의 공동체가 성장하게 되자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애착심을 버리고 그 공동체를 교구장에게 위임함으로써 드러낸 이탈의 영성은 그의 정신을 도욱 잘 드러낸다.
그의 영성에서 보여지는 것은 잘 익은 열매들을 거둔 후 들판에 버려진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사목에 임했으며 결코 자신을 우선하지 않는 이탈의 자세였던 것이다.
한 권의 문헌도 남겨두지 않은 쇼베신부의 영성은 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마리안드 티에게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아리안은 유서에서 『교회의 유익과 이웃의 필요를 위해 세속을 떠나 하느님께 나 자신을 바칩니다.』라고 고백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와 그 창설자 루이 쇼베 신부, 그리고 후대 회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영성은 무엇보다 사도 바오로의 정신이다.
쇼베 신부 당시 프랑스에서는 전쟁의 황폐함 후에 사람들은 물질적 결핍으로 인한 가난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앙 생활 자체를 잃었다. 그에 따라 신자 재교육이 가장 시급한 현안의 하나로 손꼽혔고 그 돌파구의 모색이 사도 바오로의 재발견이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외적으로는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활동이었다. 즉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가난한 이와 병든 이들을 방문함으로써 그 마을 사람들의 인간적, 영적 품위를 높이기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영혼 구원을 위해 인간 본래의 품위를 끌어올리려는 창설자 쇼베 신부의 사도적 열정과 희생이 기초가 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영성은 근원적으로, 모든 이를 비참에서 구원한 그리스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영성적, 내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파스카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오로 영성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그리스도로 인해 기쁨과 충만함이 넘쳐나고 그 충만함을 나누는 생활이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물질적인 엄청난 풍요를 누리고 있다. 또 이런 풍요를 더 풍부하게 누리기 위해 무한의 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물질과 경쟁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반면 그 안에서도 여전히 하느님을 열망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느님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이러한 인간 상황은 예수 당시에도 마찬가지 일 수 있었다. 당시 물질적 풍요를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누렸고 수많은 다른 종교와 그 종교의 신들이 숭배됐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그리스도로 인해 충만함을 느끼게 되고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심을 체험하면서 어떤 처지에서도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기쁨을 누리며 가진 것이 없어도 부유했다. 더 많이 갖거나 다른 이를 이겨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한 분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삭 줍기의 영성 역시 작은 것 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기쁨이며 영성이라는 것이 결코 멀리 있는 특정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과 친교를 맺고 살아가는 정신이다.
사도 바오로의 영성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공동체이다. 인간의 품위와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공동체를 존중했다. 현대인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다. 하지만 오히려 홀로서기에 자신이 없고 공동체에 대한 갈구가 더 큰 것이 현대인들이다. 사도 바오로는 항상 공동체를 형성했다. 「친교의 영성」이 그래서 수도회에 매우 중요한 영성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중심의 파스카 신비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영성의 핵심이며 이는 300여년 동안의 수녀회 역사 안에서 잘 나타나 있다. 하느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은 결국 이웃 사랑으로, 특히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가난하고 미소한 이들을 섬기는 가운데 바오로 사도처럼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려는 삶으로 드러나게 된다.
수도회 창립 192년만인 1888년 4명의 선교 수녀들이 한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게 된다. 아직 순교자들의 선혈이 마르기도 전인 한국 땅에 최초의 수도회로 자리잡은지 100년이 훌쩍 넘은 오늘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새천년기 새로운 복음화의 요청에 따라 또 새로운 면모로 일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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