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시골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웃지 못할 실수를 범하게 되곤 한다.
몇 달 전의 일이다. 급하게 약국을 찾다가 겨우 찾아낸 곳이 있었다. 외양이 너무 허름해서 이런 집에서 파는 약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던 것은 약을 주문하면서부터였다. 약 이름을 들은 주인 아저씨의 눈빛과 어투가 돌연히 바뀌더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경멸 섞인 눈빛으로 딱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없어요! 너무도 단호한 부정에 아픈 데가 더 아파지는 듯했다.
마음이 상한 채로 궁지에 몰린 나는 소비자는 왕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규범을 「거창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로서의 공식적인 입장(?)을 똑부러지게 피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약국에 그런 평범한 약이 없으면 어떡해요? 약국이라고 간판을 내 걸지 말던가! 이에 아저씨가 하는 말. 이보슈, 여기는 약국이 아니여, 농약 파는 집이랑께…. 깜짝 놀라 밖의 간판을 보니 「농약」이라는 붉은 글씨가 선연히 들어왔다. 농약을 파는 약국이 따로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급한 마음에 「약」 자만보고 무작정 들어간 거였다.
지혜와 질서
성서의 지혜는 「질서에 대한 추구」를 내포하고 있다. 즉 세상에는 하느님이 이미 설정하신 기본적 질서가 존재하고 이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농약 가게에는 농약만 판다. 거기서 사람 먹는 약 달라고 하면 비웃음과 놀림을 받는 건 당연하다. 사람 살리는 약은 없고 죽이는(?) 약만 있는 곳이라는, 그 곳만의 질서를 어기고 무시한 댓가이다. 결국 지혜롭게 사는 길은, 자장면 먹으면서 짬뽕 맛을 기대하는 「자기 모순」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코흐(Koch)의 연구가 흥미로운데 그는 『운명을 산출시키는』(destiny-producing) 행위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성서상의 징벌이나 재앙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행위와 결과는 심리적으로 연루되어 있어, 악한 행동을 하면 악한 결과가 오고 선한 행위는 선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즉,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연 질서(양심)에 따라 성실한 과정을 통과한 계획은 「축복」이라는 결과를 낳고, 반대의 경우는 「저주」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지혜」와 「질서」의 관계는 창세기 초장에도 잘 제시되어 있다. 혼돈과 무질서로부터는 절대로 지혜가 등장할 수 없고, 세상을 창조한 말씀(지혜)은 「질서」에서부터 유래한다. 어두운 혼돈의 상태(창세 1, 1~2)를 「분리하고」 「가르시면서」 창조는 진행되기 때문이다(창세 1, 3~10). 혼돈과 어두움을 구분하는 「질서」로부터 「지혜」는 생겨나고, 이는 곧 「생명」의 시작(창조)과 연결되고 있다. 생명의 시작을 지혜에 근거한 것으로 본다는 의미에서, 지혜는 하느님의 창조사업과 관련되고, 지혜를 「생명의 샘」(잠언 13, 14), 「생명의 나무」(잠언 3, 18) 등으로 표현하게 되는 근거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구약성서적 관점에서 본다면 「지혜를 얻는 것」은 곧 「생명을 얻는 것」이다.
숙녀 지혜(지혜의 인격화)
이러한 맥락에서 지혜문학의 중요한 신학인 「숙녀 지혜」가 등장한다. 숙녀 지혜란 지혜를 여성으로 인격화한 것인데, 이러한 신학은 위에서 설명한 부분과 면밀히 연관되어있다. 즉, 지혜는 질서를 통해서 오고 이를 통해 창조(생명)가 이루어진다는 사상을, 생명을 산출하는 여성 고유의 특권과 연결시킨 것이다. 여성이 생명을 산출하듯, 지혜는 생명을 산출한다는 의미에서 「여성」(숙녀지혜)에 은유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혜를 따르는 사람은 새로운 존재, 그 새 질서 안에서 새로 태어나고 주변의 것들을 생명으로 넘치게 한다. 이러한 숙녀 지혜의 모습은 욥기 28장 잠언 1.8.9장 바룩 3, 9~4, 4 집회 24장 지혜 7, 7~9, 8장 등에 등장한다.
진정한 여성성은 생명과 삶의 「생산」에 있다. 주변을 「살아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저력! 왜곡되고 손상된(혹은 비하된) 여성의 모습만을 답습하고 있는 이 사회에 지혜문학이 제시하는,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여성의 참 모습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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