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종합】 가톨릭 교회가 위대한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탄압하고 심지어는 고문까지 했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과 오해라는 것이 당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의 서한을 통해 밝혀졌다.
최근 발견된 한 서한에 따르면 당시 교황 우르바노 8세는 갈릴레오에 대한 조사가 그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될 수 있는대로 빠른 시일 안에 마쳐져야 할 것이라고 우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편지는 최근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회사 학자인 프란체스코 베레타 교수에 의해 신앙교리성의 문서고에서 발견됐다.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빈첸조 마쿨라노 다 피렌주올라가 1633년 4월 22일 쓴 이 편지는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추기경에게 보내진 것으로 갈릴레오의 건강에 대한 교황의 염려를 담고 있다.
신앙교리성 사무총장 안젤로 아마토 대주교는 『오늘날 일부에서 갈릴레오는 자유와 근대, 진보의 대명사이고 반면 교회는 교조주의, 반근대주의의 대명사로 간주된다』며 그러나 『사실은 환상에서 오는 이러한 인식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1610년 갈릴레오가 천동설을 주장하는 책을 펴냈을 때 요하네스 케플러와 그레고리안력의 저자인 예수회 학자 클라비우스 등의 갈채를 받았다』며 『심지어는 추기경들은 그가 발명한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를 반대하는 이들은 철학자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를 추종하는 피사의 소요학파 학자들이 주로였다』고 말했다.
아마토 대주교는 교회가 갈릴레오를 투옥하고 심지어 그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도록 고문까지 했다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며 이러한 오해는 불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일 동안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조사를 위해 머물 때 그의 숙소는 조사를 책임진 최고위급 관리의 방이었고 자신이 데려온 보좌관의 보좌를 받았다』며 『조사 후에도 그는 메디치가의 한 대사관의 숙소에 묶었다』고 말했다.
교황청 문화평의회 의장인 폴 푸파드 추기경은 『물론 그는 일종의 가택 연금으로 인해 힘들어하기는 했지만 일부는 이 선고를 거부했고 교황은 이에 대해 서명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갈릴레오는 자신의 연구를 계속했고 1642년 1월 8일 자신의 집에서 신앙과 과학적 확신을 방해받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한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오와 관련해 1981년 신학자, 과학자,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발족했고 1992년 이에 대한 결론을 내려 교회 법정의 오류에 대해 공식 선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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