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때때로 그 항해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에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그러면 그 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저에게 옵니다』(마리누스 수사 회고록 중).
1950년 12월 22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은 위기에 몰렸고, 장진호 포위 돌파작전에 이어 흥남 철수가 시작됐다. 대부분의 군대는 이미 철수했고, 도시는 적막의 포화와 화염에 의해 시시각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같은 시간. 흥남 항만에 정박 중이던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의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당시 37세) 선장은 갑판에 서서 해안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두에는 머리와 등에 보따리를 이고 진 피란민 10만여명이 운집해 있었고, 그들은 군함에 오르기 위해 서로 아우성을 쳤다. 당시 라루 선장은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는 울부짖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지나칠 수가 없었다.
흥남 철수 당시 난민을 구출한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승무원들과 피란민들의 휴먼드라마를 담은 「기적의 배」(빌 길버트/안재철 옮김/자운/206쪽/1만2240원)가 최근 한국어판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를 지냈고,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던 빌 길버트. 미국 대통령자문위원이자 미주 가톨릭신문 위촉기자로 활동 중인 재미교포 안재철(베네딕토.47.미국 뉴저지주 오렌지본당)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1950년 12월 24일. 라루 선장은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피란민들을 모두 배에 태웠다. 갑판과 화물칸 등에 들어찬 한국인 난민의 수는 대략 1만4000여명. 이들은 물과 식료품은 물론이고 화장실마저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적군의 포위망을 뚫고 3일만에 거제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항해 도중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오히려 4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적이 펼쳐졌다.
당시의 선원들은 『50여명이 정규 승선인원이었던 그 배에 1만4000명을 승선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며 『성공적인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라루 선장의 확고한 신앙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증언한다.
라루 선장은 이로부터 4년 뒤인 1954년, 22년간의 해상생활을 마치고 뉴저지주 뉴튼에 있는 베네딕도회 소속 세인트 폴 에비 수도원에 들어가 「마리누스」란 이름으로 수사가 됐다.
군함도 아닌 화물선으로서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60년 「용감한 배」 표창을, 라루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과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한편 역자 안씨는 라루 선장이 삶을 마친 미국 뉴저지주 뉴튼수도원 내에 추모 공원과 기념비를 건립하고, 이들의 「인도주의 정신」을 한국식 창작 뮤지컬로 각색해 한국과 미국에서 공연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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