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전국에서는 전투가 한창이다. 지금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은 자잘하게 지구촌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광할한 우주를 무대로 펼쳐진다.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엄청난 전투력을 지닌 괴수, 요정, 마법사와 신들의 전쟁이기도 하다.
폭발적인 게임산업 확산
지금 한국은 게임 중이다. 「스타크래프트」가 열어준 게임 세상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후 빠른 속도로 확대되면서 게임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끊임없는 대작 게임들의 제작,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PC방, 게임 연령층의 확산 등 가히 「게임 공화국」의 면모를 더해가고 있다.
게임 산업의 규모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게임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인 위치」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IT로 대변되는 정보 통신 산업에서 게임의 비중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게임 산업의 규모는 3조 4000억원 수준, 하지만 2005년에는 5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볼 때 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는 더 화려하다. 지난해 8억 7500만 달러에서 오는 2008년에는 무려 50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래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게임 산업의 진흥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게임은 단순한 아이들의 오락이었다. 하지만 게임이 지닌 쌍방향성의 잠재력은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그 잠재력은 인터넷을 만나면서 현실화됐다. 인터넷을 통한 게임, 이른바 「온라인 게임」은 컴퓨터를 운용하는 사람들간의 교감으로 게임을 승화시켰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어떤 면에서는 그저 기괴하게 생긴 세 종족 간의 부수고 죽이는 단순한 게임이 범국민적인 호응을 받고, 사람들의 일상 생활까지 바꿔놓은 것은 이러한 「의사 소통으로서의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게임은 더 이상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다. 대중 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어엿한 한 장르로 자리잡고 우리 시대는 문화의 한 영역으로 뿌리를 내렸다. 여기에 이른바 비디오 게임, 별도의 콘솔박스를 이용해 TV화면을 통한 게임으로 그 영역을 더욱 확대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이제는 10대에 머물지 않는다. 경제력과 높은 충성도를 지닌 30대 이상 어른들에게도 게임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의 수단이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에는 성인용 온라인 게임들이 쏟아지고 있다.
가히 게임은 「문화」의 수준과 영역에 도달했다.
게임 확산의 명암
그러면 우리 사회 주류 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한 「게임」에서 문제는 없을까? 게임의 부작용들은 시대 전환기적인 통과 의례의 하나로 간과해도 좋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게임이 갖고 있는 역기능들이 현재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지난해 1만4천여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아이들이 인터넷을 하는 주된 목적으로 온라인 게임(28.1%)을 가장 많이 꼽았다. 한국 게임산업개발이 지난 3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현재 게임을 이용하고 있다」는 대답을 한 아이들이 9~14살이 95.6%, 15~19살은93.3%로 나타났다.
결국 거의 모든 청소년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하루 평균 게임 시간은 5시간 이상이 23.8%, 4~5시간이 31.6%, 3~4시간이 28.4%였다. 80% 이상이 하루에 3시간 이상 게임을 하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중독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온라인 범죄도 빈발한다. 가상의 게임 아이템이 실생활에서 거래되면서 ID 도용과 사기, 폭행, 갈취 등의 범죄가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말 현재까지 집계된 4만42건의 사이버 범죄 가운데 55.8% (2만2329건)가 통신, 게임 사기였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가 더 늘어난 수치이다.
올바른 이해와 대처
부작용만 보고 게임이 무조건 「독」이 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독일의 아동심리학자인 볼프강 베르크만은 게임이 창의력을 키우고 감성을 높이고 논리적인 사고와 적응력, 판단력, 문제풀이 능력을 키워준다는 보고서를 낸 적도 있다.
어쩌면 문제는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에 있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지난 3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로 「여가 시간에 다른 할 일이 없어서」(31.0%)를 가장 많이 꼽았다. 또 「현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30. 9%), 「주위 친구들이 게임을 이용하므로」(22.3%), 「게임을 통해 사람을 만나려고」(6.3%)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 만을 놓고 보면 아이들이 단순히 게임의 재미 때문에 게임에 매달린다기보다는 적절한 여가 활용 방법과 스트레스 해소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게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다양한 여가 활용의 방법을 알려주고 충분히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은 이미 금지와 규제로 막을 수 없는 문화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게임 문화를 어떻게 제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이나 인터넷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데 어른들은 오히려 소통이 단절됐다고 말한다』고 항변한다. 이는 즉 게임과 인터넷에 대한 계층간의 이해가 엄청난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게임이라는 하나의 대중적인 문화 현상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게임과 그 이용자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사회적 규제와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게임의 세계관
죽이고 부숴야 내가 사는 세상 생명경시 우려
온라인 게임들이 지닌 중독성이나 사이버 범죄 등의 문제에 대한 지적과는 달리 게임들이 보여주는 세계관이나 인간관 등 가치관의 문제는 사실 그다지 논란이 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사실상 교회의 시각에서 볼 때 신화와 전설, SF적인 상상력을 자주 원용하는 이들 게임들의 가치 체계는 사용자의 가치관이나 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스타크래프트의 배경이 되는 스토리는 우주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생물체의 진화, 미래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신화,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이 조합돼 있다.
성인용 게임인 A3는 전설 속의 대륙들을 배경으로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족들과 신들간에 벌어지는 사랑과 갈등, 대립과 분열, 지배와 복종 등의 다양한 관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리니지」는 아덴이라고 하는 배경 세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을 위협하는 몬스터들 사이에서 왕위를 되찾기 위해 기사나 요정, 마법사가 되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뮤」라는 게임에서는 고대 제국을 배경으로 암흑의 신, 몬스터와 마물, 인간의 연합군 등이 등장해 악의 세력과의 싸움을 펼친다. 새로 성인용 게임 서비스를 준비 중인 「프리스트」는 인간과 타락한 존재들간의 싸움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들 게임에서 승리의 관건은 적을 섬멸하는 것이다. 대개가 적을 완전히 섬멸해야 승리를 얻는다. 힘의 우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다. 일부 게임에서는 창조된 생물들이 적과의 전투에 소모되는 것만이 유일한 존재의 의미이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자원과 가스를 채취해서 생물을 창조한다.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 창조를 경험하지만 이 창조는 파괴를 위해 소모된다.
가상과 현실을, 그 무의식적인 인식까지도 능히 구분하는 성인들에게야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자칫 생명의 의미가 경시될 우려도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오직 폭력과 살상으로써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관의 왜곡이라는 부작용을 자아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우려들이 단순히 하나의 가상 현실 속에서 이뤄지는 이런 모든 일들에 대해 지나치고 과장된 염려일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온라인 게임의 부작용들이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보다 진지한 연구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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