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방송을 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모 휴대폰 광고 중 마음에 드는 카피를 본 적이 있다. 『당신은 가진게 참 많은 여자입니다』라는 카피였다. 고서들로 가득 찬 서재와 멋진 텐트까지 가지고 있는 광고 속의 그녀는 분명 가진게 많은 여자였다. 하지만 그 광고가 좋아진 것이 그 멋진 서재와 텐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질적으로는 가진게 없지만, 그리고 그녀처럼 많은 여행과 만남들로 그리워할 추억 같은 걸 가지고 있지도 못하지만, 살아갈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생을 경외하며 살고자 하는 열정과 순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진게 많은 여자」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녹아있는 지혜(하느님)의 발견은 곧 생명의 발견이요, 행복의 발견임을 몇 주전부터 언급해오고 있다. 우리 마음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발견이, 우리 모두를 가진게 많은 이들로 해준다는 것, 이번 주에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주제이다.
지혜의 신격화
지난 주 우리는 「숙녀 지혜」 라는 지혜문학 특유의 신학에 대하여 알아본 바 있다. 이 독특한 주제는 하느님의 속성과도 연결되어 발전하게 되는데, 생명을 준다는 의미에서 지혜를 여성에 은유하고, 동시에 생명의 기원이신 하느님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숙녀 지혜 개념이 지혜에 대한 「인격화」였다면, 지혜를 하느님으로 보는 시각은 지혜에 대한 「신격화」 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시각은 신약성서에서 「로고스」(말씀) 개념으로 발전하는데, 창조 때 계시던 「지혜」를 「말씀」 곧 「로고스」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신약성서 내내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있는 말씀」으로 지칭하는 것 역시, 이러한 지혜 문학적 시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지혜가 거처하는 곳
지혜가 거처하는 곳은 「마음」이다. 즉, 지혜를 갖게되는 것은 생명을 얻게되는 것이고, 결국 이는 생명의 중심인 마음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의 불의와 불공평 속에 현대인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은 「신의 부재」 혹은 「침묵」에 대한 것이다. 절망과 분노로 흔들리며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의 공의(公儀)하심을 갈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혹은 「숨어 계신」 듯한 하느님을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비슷한 딜레마는 이미 욥기에서 잘 제시된 바 있다. 욥은 무죄한 이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하느님을 고발하며 그분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고집한다(9, 32~35 13, 3. 16. 22 16, 18~22 31, 35~37 등). 그러나 처절한 고투 후 그가 마주한 것은 「침묵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그 무거운 「침묵 안에 함께 하고 계시며 고통을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었다.
결국 하느님의 부재-침묵에 대한 주장은 「마음 안의 지혜」를 발견하지 못한 인간의 오만한 습관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닐는지….
지혜와 길
성서에서 (경험)지혜와 연관된 「길」을 의미하는 단어는 「데레크」(derek)인데(잠언에 75번 정도 등장), 이 길은 삶을 충만하게 하고 주님과의 계약적 관계성을 유지하게 하는 방법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길에 대한 지혜문학적 배경은, 하느님과 구원에로 도달하게 하는 길이자 지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던 율법(십계명을 비롯한)과 공통분모를 갖는 것이었다.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도리)의 제시라는 맥락에서 토라(율법서)와 지혜문학에서의 「길」 주제는 서로 유사한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신은 가진게 참 많은 분이십니다
인생의 가장 큰 위기는 자신이 걸어야할 「길」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길에서 이탈할 때 생긴다. 결국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설사 그 길이 이전에 걸었던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고 먼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나의 내면으로부터 발견해내고 수용하는 마음일 것이다. 독자들 중, 이에 긍정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당신은 지혜를 일찍 들여다 본 사람이며, 그러므로 「가진게 참 많은 사람」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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