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2월 8일, 동계 방학을 결정한 후, 전날인 7일 밤에 생각지도 못했던 뇌졸중으로 눕게 되었다. 말을 못하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내일 혀가 풀릴 수도 있고, 혹은 모레, 혹은 일주일 후, 혹은 한 달 후, 십 년 후….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의사의 말에 「이것으로 내 인생은 끝났구나」 하는 절망감에 퍽 당황하고 있었다. 누워서 지나온 10년 동안의 광주 신학교 생활을 생각해보았다.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10년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걱정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러나 한사람한사람 걱정되던 학생들이 신부가 되어 본당에 배치된 다음, 소식을 전해오면 한없이 기뻤다. 그리고 그 어려웠던 시간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가 차라리 행복했었다고 느껴졌다. 병이 나기 1년 전, 교황님께서 학교를 방문했을 때, 신학교 학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씀하시며 교회 장상만이 어려움을 감당해야 할 자격이 있다고 하셨다.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교회 장상은 교회가 잘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소식을 들은 이문희 대주교님은 즉시 대구로 오라는 전갈을 보내왔고, 오는대로 가톨릭병원에 입원하라고 했다. 검사 결과, 뇌의 언어신경계통 모세혈관 하나가 막혀서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대구에서, 서울 바오로 병원으로 한방치료를 받는 등 여러 방면으로 치료를 계속 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던 중, 처음 의사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죽을 때까지 혀가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말이 오히려 나에게 약이 되었던 것 같다.
우선 광주가톨릭대학교 학장직에서 물러나고 그 해, 한 해를 쉬기로 했다. 마음을 너그럽게 먹어서 그런지 차차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정도 강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왕 쉬기로 했던 한 해는 지나가고 1987년 신학기부터 대구가톨릭대학교(신학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한 학기를 끝마치고 여름 방학 때 로마에 여행도 다녀올 수 있을만큼 건강도 좋아졌다.
2학기를 며칠 앞두고 전 효성여자대학교 총장 전석재 몬시뇰의 건강이 악화되어 재기불능의 상태라고 전해졌다. 이문희 대주교님께서는 몇몇 신부님들과 회의를 한 후, 『김영환 신부가 학장직을 맡았던 경험도 있고, 학위도 있고, 외국어도 잘 하니 전석재 몬시뇰을 도와 효성여자대학교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효성여자대학교 부총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당시 전국적으로 모든 학교에서는 데모로 하루가 시작되고 데모로 하루를 지세웠다. 특히 대학사회는 상아탑이니, 지성의 전당이니 하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밤낮 가릴 것 없이 데모가 심했다. 어느 학교가 더 하고 덜한 것이 아니라 대학이라고 생겼으면 모든 대학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독재정권 물러가라」는 데모였지만, 각 대학마다 가진 취약성 때문에 데모하는 이유가 달랐다. 물론 효성여자대학교도 그중 하나였다. 심지어 「운동권 학생」이라는 말도 생겨나고, 「데모꾼 학생」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번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 사람은 이후 어디를 가든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운동권, 데모꾼」에 속했던 학생들이, 오늘날 정치계와 사회 각 분야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단합해서 하나가 되고 모두가 힘을 합해서 나라 발전이나 도덕성 회복을 이루는 일은 과연 언제가 될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
부임 후 반년이 지난 겨울, 전석재 몬시뇰 총장은 돌아가시고, 나는 효성여자대학교 제3대 총장으로 임명이 되었다. 사회 전체가 데모 분위기였고, 대학 전체가 데모 분위기여서 사실상 공부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능한 총장이라 하더라도 그 와중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 와중에도 미국 조지아서튼(Gorgia Southen) 대학교와 소련연방 타쉬겐트 대학교와 자매결연도 맺어, 보다 국제적으로 경쟁력있는 학교로 만들려고 무척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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